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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대종사 봉래정사에서 모든 제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옛날 어느 학인이 그 스승에게 도를 물었더니 스승이 말하되 너에게 가르쳐 주어도 도에는 어긋나고 가르쳐 주지 아니하여도 도에는 어긋나나니, 그 어찌하여야 좋을꼬하였다 하니, 그대들은 그 뜻을 알겠는가. 좌중이 묵묵하여 답이 없거늘 때마침 겨울이라 흰눈이 뜰에 가득한데 대종사 나가 시사 친히 도량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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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1994.06.17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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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대종사 영산으로부터 봉래정사에 돌아 오사 한 제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영산 에서 윤선으로 이곳에 올 때에 바닷물을 보니 깊고 넓은 지라 그물을 낱낱이 헤어 보았노니, 그대도 혹 그 수를 알겠는가하신데, 그 사람이 말씀 뜻을 짐작하지 못하니라. 한없이 깊고 넓은 바닷물의 양이 얼마나 되는가? 한 되 두되, 한말 두말, 한선 두선이라는 숫자의 개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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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1994.06.1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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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종사 봉래정사에 계시더니 때마침 큰 비가 와서 층암절벽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와 사방 산골에서 흐르는 물이 줄기차게 내리는 지라, 한참동안 그 광경을 보고 계시다가 이윽고 말씀하시기를 저 여러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이 지금은 그 갈래가 비록 다르나 마침내 한곳으로 모아지리니 만법귀일의 소식도 또한 이와 같나니라 높은 산꼭대기 층암 절벽 끝에 소나무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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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1994.05.2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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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소재의 봉래수양원을 변산원광선원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봉래수양원은 교단에서 인수하기 이전부터 원광선원이라 불렀는데, 교단에서 인수하면서 봉래정사의 이름을 살려서 봉래수양원이라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원광선원이라 이름이 널리 사용되었고, 교단의 각종 선원이 차츰 폐지되면서 중앙상주선원 하나만 남게 되어 선원이라는 이름을 계속 살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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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1994.05.13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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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교구에서는 17일 변산 제법성지에서 법회 및 성지 순례를 실시했다. 제법성지의 성자 혼을 체받자는 주제 아래 25개 교당 700여명이 참석, 원광선원에서 법회와 함께 기원식도 아울러 진행, 기도 헌공금 3백1십만 원을 제법성지 성역화사업을 위해 원광선원에 기탁했다. 법회후 서문성 교무의 안내로 원광선원쌍선봉월명암정산로석두암터로 내려오는 1코스와 몸이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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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1994.04.29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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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안이 관가의 주시 속에서 멀리 산 속으로 피해 숨어살고 있었기 때문에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도 멀어지게 되었고 일가 친척들도 불안하게 생각하였다. 그 동안의 떳떳하고 당당했던 가풍은 사라지고 들녘의 이름 없는 잡초처럼 모진 생명을 이어가면서도 나의 할머니나 어머니에게 있어서 유일의 희망은 옛명성을 되찾는 일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어두운 새벽에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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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1994.03.18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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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학생연합회 겨울훈련이 12월 2426일 2박3일 동안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원광선원에서 있었다. 결제식을 시작으로 산상기도 및 최성정 교무(휴무)의 지도로 탈춤을 익힌 후 구인선진들의 법인기도회향식 장소인 쌍선봉을 거쳐 월명암, 정산로를 지나 봉래정사 터에서 기도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서문성 교무(휴무)로부터 제법성지에 관계된 법문 및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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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1994.01.14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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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아버지 회갑을 맞이하여 가족으로가 함께. 뒷줄 좌측에서 세 번째가 필자. 내 고향 원평은 모악산의 정기를 받아 예로부터 많은 성인들과 도인들이 다년간 종교의 본산지라 불리는 곳이다. 특히 교단 적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으로 대종사님께서 정관평 방언 공사와 백지혈인의 법인성사를 마치시고 원기 4년 3월 금산사에 행가 하시어 신앙의 대상과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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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1993.12.0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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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의 호칭은 여러 가지가 있다. 제자들로부터 대종사란 존칭으로 널리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원기 38년(1953) 제1대 성업봉찬대회 이후였다. 소태산 대종사의 어릴 때의 이름은 진섭이라 불렀고, 결혼한 후 대각하기 까지 에는 처화라 불렀다. 족보에는 희섭으로 되어 있고, 결혼 후 동네 부인들로부터는 장촌어른이라 불렸다. 양하운 대사모가 장촌댁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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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윤
1993.07.02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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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 재 부 소태산 대종사 한()두렷한() 기틀() 원불교에서 우주와 인생의 궁극적 진리를 일원상이라고 표현하기까지에는 상당히 오랜 세월에 걸친 발전과정이 있었다. 소태산 대종사가 1916년 4월 28일 이른 새벽, 20여년의 구도생활 끝에 마침내 큰 깨달음을 얻고, 그 깨친 진리의 경지를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없는 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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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1993.06.04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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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대종사 봉래정사에서 제자들에게 글 한 수를 써주시되 변산구곡로에 석립청수성이라 무무역무무요 비비역비비라하시고 이 뜻을 알면 곧 도를 깨닫는 사람이라하시니라. 변산의 아홉 구비 구비구비 아름다운 물길이여 무심한 저 돌멩이, 흐르는 물소리에 홀로 흥겨워 없고 없어라 없다는 것도 또한 없어라 아니고 아니어라 아니라는 것도 역시 아니어라. 구곡이란 경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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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1993.06.03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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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 재 부 교리중심의 첫 교서수양연구요론, 원기 12년 발행 원불교 창립 과정에 있어서 중요한 특징의 하나는 교조 소태산 대종사 당대에 교리체계와 교서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원기 12년91927) 3월에 <불법연구회규약>이 발간되었는데 이가 원불교 최초의 교서이다. 초판본에는 불법연구회 창립총회 때 채택된 6장 22조의 규약과 불법연구회의유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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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1993.05.14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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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 재 부 모든 경전 쉽게 편찬하고남녀 교역자 두루 양성 소태산 대종사는 불교 혁신운동에서부터 원불교를 창립하기 시작했다. 소태산 대종사는 스승의 지도 없이 스스로 큰 깨달음을 얻었으나, 석가모니불을 성인들 중의 성인이라 찬탄하고, 정차 불법을 주체 삼아서 미래세계의 주세종교가 될 새 회상을 창립하리라 천명하였다. 이러한 까닭으로 불교의 교리나 제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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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1993.03.19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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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부소태산 대종사의 대기대용정산종사와 최도화의 만남 불법연구회 창립총회를 끝낸 직후, 소태산 대종사는 만덕산 (전북 진안군 성수면 중길리 소재)에 있는 김씨 소유의 산제당인 만덕암에서 교단 최초의 (비공식)를 갖게 되었다. 이때 같이 참석했던 사람들은 소태산 대종사를 비롯하여 송규오창건기모강선전음광박사시화이청춘노덕송옥전삼삼이동진화김삼매화김대거 등 13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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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1993.03.1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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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는 봉래정사에서 원불교의 교리와 제도를 구상하고 제정하였다. 또 한가지 중요한 일은 창립인연들과의 만남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처음 영산에서 구인제자를 만났고, 다시 봉래정사에서 많은 창립인연들을 만나 교단 창립계획을 단계적으로 실천하게 되었다. 소태산 대종사가 영산과 봉래정사에서 만난 창립인연들은 구인제자 이외에 송적벽김혜월이청풍이만갑문정규구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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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1993.01.22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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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조합운동영산방언공사혈인 성사 등 교단 창립을 위한 세 가지 중요한 기초작업을 끝내고 원기 4년(1919)늦가을 경에 소태산 대종사는 몇몇 제자를 데리고 전북 부안군 산내면 봉래산에 있는 봉래정사로 들어갔다. 봉래산은 변산반도의 중앙부에 위치해 있고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부안 변산 일대는 예로부터 의 하나로 전해오고 있다. 십승지지란 예로부터 전해오는
교화
원불교신문
1993.01.15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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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원기 4년 대종사께서 쌍선 봉에 올라 연잎이 떠 있는 모습 같다고 하신 하섬전경.변산반도의 (주요점청) 호남의 금강이라 불리는 변산반도, 그 변산 앞바다에 자리잡은 조그마한 섬 하섬은 바로 변산반도의 화룡점정이다. 원불교 제법성지의 일원으로 일찍이 대종사님께서 쌍선 봉에서 연꽃 피는 섬이라 일러주신 하섬은 아직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등 문명의
교화
원불교신문
1992.10.30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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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교구에서는 지난 20일 내변산 제법성지에서 교구 22명의 교도회장단들이 참석한 가운데 교구회장단 훈련을 실시했다. 김성주 군산교구장은 결제식 훈화를 통해 신앙과 수행의 힘을 쌓는 교도회장들이 도어 모든 교도들의 사표가 되자고 말했다. 이어 봉래정사 석두암 터에서 특별기도식을 가진 후, 원광선원에서 박철주 선생으로부터 초기교사에 대해 강의를 들었다.
교화
원불교신문
1992.10.09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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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봉래정사 석두암 터. 수행자의 한결같은 염원이라면 견성성불일 것이다. 견성성불 그것은 나 같은 범부와는 너무도 먼 거리, 까마득한 저 언덕 너머에 있는 것만 같다. 그러나 할 수 만 있다면 도를 깨달아 보고 싶은 욕망은 원불교의 문을 두드린 그 날부터의 한결같은 소망일 것이다. 변산 아홉 구비 길에 돌이 일어서서 물소리를 듣는다. 없고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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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1992.09.11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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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과 함께 예부터 많은 성인들과 도인들이 즐겨 찾으며, 한국종교의 본산지로 불리 우는 모악산. 모악산의 정기를 받아 원불교와는 회상창립 초기부터 각별한 인연을 맺어온 원평은 소태산대종사가 교서를 편찬할 때 맺은 금산사 칠성각과의 인연하며, 회상창립의 중추적 역할을 했던 선진들, 특히 정녀 1호였던 공타원 조전권 종사의 고향이기도 하다. 70여년의 교화역
교화
원불교신문
1992.06.26 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