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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왜 보통사람들이 하는 평범한 생활을 마다 하셨습니까하고 물어오는 학생들이 종종 있다. 그리고 나를 보통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사람으로 여기고 나에게 다가 오기를 주저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내가 특별한 사람이 아닌 보통사람이라는 것을 납득시켜 가까워 지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특별한 사람보다는 보통사람에게 어쩐지 정이 더 간다.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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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인(교무 원광대 교수)
1983.04.26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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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로서의 불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무엇보다도 에 관한 문제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토록 불교의 신앙적 사상적 중핵을 이루는 불신에 관하여 불교사상에는 원시불교이래 다양한 신앙운동과 사상적 논구가 전개되어 왔다. 즉 원시불교와 부파불교의 법신 생신의 소박한 이신설을 거쳐 대승경논상에 법 보 응의 삼신설이 제기되고 이들 제경론들을 근거로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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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1983.03.2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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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로서의 불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무엇보다도 에 관한 문제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토록 불교의 신앙적 사상적 중핵을 이루는 불신에 관하여 불교사상에는 원시불교이래 다양한 신앙운동과 사상적 논구가 전개되어 왔다. 즉 원시불교와 부파불교의 법신 생신의 소박한 이신설을 거쳐 대승경논상에 법 보 응의 삼신설이 제기되고 이들 제경론들을 근거로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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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1983.03.2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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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단지로써 그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한 창원시. 한때는 마산시에 편입이 되기도 했던 이곳에 이제는 경남도청이 세워지게 되고 정부의 구체적인 계획에 따라 신도시로의 성장을 눈 앞에 보게 되었다.여기에 일원으 법종자가 뿌려지기는 약 17년전인 원기 51년. 당시 마산교당 학생회원이었던 설윤환(동산선원) 교무와 설덕혜씨의 발원으로 조명정화씨 자택에서 출장법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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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1983.01.26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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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교정원이 출범했다. 새 교정원이 출범하면서 신진 40대 부장들로 교체되는 등 여러모로 크게 탈바꿈 됐다. 탈바꿈한 새 교정 주역들의 임기동안의 포부를 들어본다.인사원칙은 임기 순환 공영제로 총무부장 장응철우리 교단은 지금까지 가족적인 분위기속에서 대종사님의 성훈에 바탕하여 덕치가 주장이 되어 운영되어 왔다. 그런데 앞으로는 대규모의 교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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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1983.01.2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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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와 새 역사 김인철(교정원 제1부원장)묵은 세상의 종장, 새 세상의 서장물질문명 반성, 역사의 방향 바로잡아야국제질서, 국력과 강자들의 협상으로 좌우.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최령한 만물의 영장인 이유는 이성을 지니고 자기성찰을 통하여 자신의 잘못을 자각하고 끊임없는 자기개선과 창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참회란 자기반성을 통하여 자신의 허물과 죄업을 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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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1983.01.06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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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 12월호에 발표된 원대 김낙필교수 논문 병든 사회에서 열린 시대 추구를 읽고 감명이 깊었으며 소태산대종사탄신백주년을 앞두고 정립되어야 할 개교사상을 원불교의 후천개벽사상으로 논한데 의의를 찾아볼까 한다.대종사께서 대각하신 후 개교지도 강령을 표어로 말씀하시기를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고 한가르침은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경고이며 돌아오는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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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석(중구교당 교도부회장)
1982.12.16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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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청년회가 성년을 1년 남짓 앞두고 있다. 69년 7월 총회가 창립20주년이 되는 것이다. 66년 12월 20주년을 계기로 기념총회와 아울러 기념사업, 기념행사등을 치르기로 하고 원청20주년기염사업준비위원회를 발족시킨 바 있다.1차년도인 67년은 원청이념의 재정립 및 사업준비 기간으로 2차년도인 68년은 기념행사 및 기념사업의 결실기간으로 예정해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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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도정 교무(원광전문대 교수)
1982.12.16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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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국가세계는 숨가쁘게 변화발전되고 우리교단도 2대말과 대종사탄신 1백주년 기념을 앞두고 내외로 해야 할 일이 많은 이때에 전로부덕한 이 사람이 공의에 의하여 다시 대임을 맡게 되어서 성령전에 송구하고 대중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그러나 위로 법신불 사은과 성령의 가호가 계속되시고 교단의 숙덕원로님과 재가 출가 모든 동지들의 호법지성이 끊임없으실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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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1982.11.16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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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20세기의 20년대에 들어오면서 모든 철학과 사상의 원리들은 인간학에 수렴되기 시작했다.막스 셀러(1874~1925)는 인간의 이념에 관하여라는 그의 인간학의 효시가 될 논문에서 확실히 철학의 모든 중심문제들은 인간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귀속된다고 했다. 그이 말년에 그는 이 시대가 해결하여야 할 가장 긴급한 철학적 과제가 있다면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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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관 교무(원대 교수)
1982.11.06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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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주교당(교무 문희원) 신설 봉불식이 10월5일 마산교구내 재가 출가교도 2백여명이 모인 가운데 거행되었다.서진주교당은 사천 하동 문산 도동교당에 이어 진주교당(교무 최규학) 5번째 연원교당으로 유익순 주무의 특별한 발원에 의해 창설되었다.이날 봉불식에서 김근수 교정원장은 심보 명보 재보 신보 법보 은보 성보 등 칠보를 잘 수용하여 극락생활을 누리고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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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1982.10.16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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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사의 대일 기본노선을 받들어 간악한 탄압정책과 감시의 질곡 속에서 인종 해야 한다는 망국민족의 비분을 달래며 교단과 더불어 창립의 한구석을 메웠다.그러기에 철저하리 만치 증오하던 왜인, 그러나 패전사반세기동안 경제대국으로 세계에 부상한 그 저변에 깔린 국민정신, 모두가 서구화되었으면서도 천년 내에 그대로 다져진 불교정신에 의하여 분장된 국민정신, 그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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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석 교무(총부 순교감)
1982.10.0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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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청운회가 19일 오후 마산시내 가야그릴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회장에 김상생씨를 선출했다. 마산 양덕 신마산 창원 군북 진영교당 등 22명의 회원이 주축이 되어 전국에서 8번째로 청운회를 결성했다.이날 창립총회에는 발기회원 일동과 교구 교무들이 참석하여 앞으로 지역사회의 친목을 다질 것을 다짐했는데 조원도씨(마산교당)의 사회로 시작된 총회에서 청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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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1982.09.26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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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 13년대의 우리들은 참 패기만만한 총부의 주역이었다. 인개 서기에 불과한 직위로서 능히 부장 권한을 대행하였는가 하면 사환 노릇까지 다하였다. 우리는 선택 받은 전무출신이라 자부하였다.요즘 60년대 총부 교정원에서는 초발심 출가, 전무출신 지원한 우리 젊은 후진들 중에 총부 사무실에 근무하는 사람을 통칭, 간사라고 하는데 나는 이것이 적당한 호칭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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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1982.07.0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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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의 한국은 외세의 강점과 민생의 도탄으로 민족의 장래가 암담하던 때였다. 이때에 각종 각파의 종교들이 우후죽순처럼 돋아나서 민중들의 앞길을 더욱 혼란의 와중으로 이끌었다. 원불교 교사는 당시의 상황을 말법현상으로 규정하고 구주출현의 역사적 필연을 기술하고 있다.마침내 원기 5년(1920년) 4월에 새 회상의 교리강령이 발표되니 인생의 요도 사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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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도정(원광보건대 교수)
1982.06.26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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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구 학생연합회 간부훈련이 2월 26,27일 양일간 서울 관악교당에서 개최되었다. 서울교구 내 교당학생의 간부 87명이 참가한 서울 교구 학생 간부훈련은 1)참된 인간으로 돌아가자. 2)은혜로운 생활을 하자 3)건전한 사회건설의 주역이 되자는 목적아래 주제는 일원을 향한 동반자였다.교당에서 1박2일간 숙식을 함께하며 강의는 신년법문에 의해 이대로 좋은가
교화
원불교신문
1982.03.10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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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립 원광대학교 81학년도 학위수여식이 2월 26일 동대학 대운동장에서 박길진 총장을 비롯한 교직원과 재학생, 학부모와 조철권 도지사와 각급 기관장 및 각계 인사등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다.4년간 형설의 공을 쌓아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된 1천1백명의 젊은 엘리뜨들은 교직원과 부모, 친지들의 축복속에 졸업의 명예를 누렸다.35개학과에 총1천1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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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1982.03.06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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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서 석사및 박사과정을 이수중인 교무들은 2월 6 7일 교육부 주최로 한국근대문화와 원불교라는 주제아래 연구발표회를 가졌다. 삼동원에서 가진 이 발표회에는 박제현 교육부장과 한정원 교무(원광대 교수) 황직평 법무실장 김인철 기획실장을 비롯 28명의 예비 석박사 교무들이 참가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이날 발표자는 다음과 같다. 한국 근대사와 원불교
교화
원불교신문
1982.02.1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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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곽기선·양법장·김정상씨(왼쪽부터)>『이곳 산외에 원불교가 세워지고 보니 그저 기쁘기만 할 뿐입니다.』봉불을 하게 된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양법장씨(고문)는 그저 『기쁘다.』는 표현만을 앞세운다. 어느 교당에나 창립의 과정에는 혈성 있는 주역들이 있기 마련이다. 산외교당은 일원의 법음을 온 누리에 전해야겠다는
교화
원불교신문
1981.11.26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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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화가 스물다섯 되던 8월 15일(음 7월 5일) 둘째 아이(장남 길진)가 출생하였다.이때 처화의 입정 상태는 더욱 깊은 단계에 이르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영문과 혜문이 열리다가 닫히기도 하고 닫혔다가 열리기도 하였다.연화봉 수양 이후 처화는 영문이 열려 하루에도 밤과 낮으로 한 달에도 선후 보름으로 밝았다 어두웠다 하는 변동이 생겼다. 혜문이 열릴 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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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
1981.08.26 1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