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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천개벽 세상의 새 주세불로서 소명을 가지고 탄생한 원각성존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일원대도를 대각한 후 제일 먼저 시작한 사업이 정관평 방언공사였다.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 앞의 바닷물이 드나드는 간석지(干潟地)에 언(堰)을 막아 논을 만드는 방대한 작업이다. 저축조합운동은 방언공사를 하기 위한 준비였다. 원기3년(1918) 3월에 시작해서 1년의 공정을 거쳐 2만6천평의 논을 만들었다.지금처럼 현대화된 장비가 없던 때인지라 대종사와 팔인제자(조합원)의 노동력에 이웃주민들의 품을 사서 지게와 삽과 괭이로 공사를 진행하는 관계로 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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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걸 교무
2015.05.08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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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공사가 마무리되어갈 무렵, 경상도 성주에서 유학자인 구산 송인기(법명 벽조)가 아들인 송규를 찾아 전라도로 향한다. 정읍 화해리에서 소태산 대종사의 친영(親迎)을 받은 정산종사가 영산성지인 영광 백수 길룡리로 들어가 토굴생활을 마쳐갈 즈음이었다.그러니까 1919년 기미년(己未年, 원기4년) 3월이었다. 아들의 편지를 받고 영광 소식을 접한 송인기(宋寅驥)가 행장을 꾸리고 여러날 걸려서 영광 길룡리를 찾아온 것이다. 당시 송인기는 전라도 행이 초행길이 아니었다. 정산종사가 강증산교 계통을 배회할 무렵 아들을 찾아 전라도를 다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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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걸 교무
2015.05.0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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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종사가 처음 영광 길룡리를 온 때는 방언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길룡리, 영산성지에 도착한 정산종사는 그 곳이 처음 같지 않았다. 낯선 곳이 아니었다. 산천이며 해변의 풍경이 익히 아는 곳이었다. 후일 정산종사는 이런 말을 남겼다."내가 일찍 경상도에서 구도할 때에 간혹 눈을 감으면 원만하신 용모의 큰 스승님과 고요한 해변의 풍경이 눈 앞에 떠오르더니, 대종사를 영산에서 만나 뵈오니 그 때 떠오르던 그 어른이 대종사시요 그 강산이 영산이더라." 〈정산종사 법어〉 기연편 6장의 말씀이다.필자도 19살에 출가를 하여 영산선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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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걸 교무
2015.04.24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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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종사가 원각성존 소태산 대종사 법하에 귀의함으로써 대종사의 최초 구인제자 그러니까 구인선진이 완성됐다.대종사는 먼저 택한 여덟 제자에게 마지막 한 사람의 합류와 그의 존재적 가치를 누누이 강조한다."우리가 만나려던 사람이 점점 가까이 오고 있다""우리가 만일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우리 일이 허사가 된다""우리가 만나려던 사람을 만났으니 우리의 성공은 이로부터 비롯하였도다"대종사의 구인제자 중 여덟사람은 다 스승과 동향인 영광 사람들이다. 유독 한 사람, 정산 송규만이 경북 성주 사람이다.대종사는 고향인 영광 길룡리를 떠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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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걸 교무
2015.04.17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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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종사가 스승을 찾아 전라도로 왔을 당시, 소태산 대종사는 대각을 이루고 제자들을 모아 새 회상 창립을 준비하고 있었다. 원기 원년(1916) 12월 진실하고 신심 굳은 여덟 사람을 택하여 수위단을 조직하면서, 대종사 말씀하기를 "중앙(中央) 재목은 뒤에 원방(遠方)에서 올 것이다"고 말했다.'구산수기'에 따르면, 대종사가 한번은 일산 이재철, 사산 오창건 양인을 불러 "너희는 장성역에 나가서 체격이 조그마하고 낯이 깨끗한 어떤 소년이 차에서 내려서 미쳐 갈 곳을 결정 못하고 두류(逗留, 머뭇거림)하거든 데리고 오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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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걸 교무
2015.04.10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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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대원사에서 3개월간 머문 정산종사는 무오(戊午, 원기3년) 춘(春)에 다시 정읍군 화해리(花海里) 김도일(金道一) 가(家)로 이주하였으니, 차처(此處)는 비록 촌일지라도 한적한 취미가 있는 연고(緣故)이더라고 '구산수기'가 소개하고 있다.정산종사가 대원사에 머무는 어느 날 화해리에 사는 경타원 김해운(莖陀圓 金海運, 1872∼1939)이 찾아왔다. 김해운은 당시 증산도를 믿고 있었다. 원평 이모집에 갔다가 체타원 구남수(體陀圓 具南守)를 만나 "대원사에서 참 도인을 보았다"는 말을 듣고 대원사를 찾은 것이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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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걸 교무
2015.04.03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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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수기〉는 정산종사, 전라도로 와서 명산 승지(勝地)를 돌아다니고 사찰에도 다니더니 원기2년(1917년) 11월경 전주 모악산 대원사(大院寺)에 들어갔다고 적고 있다.대원사는 진묵대사(震默大師, 1562∼1633)가 지나갔던 곳이요, 증산교의 교주인 증산 강일순(甑山 姜一淳, 1871∼1909) 천사가 도를 깨달은 성적지이다.대원사는 규모는 작지만 오랜 전통에 얽힌 이야기가 재미있고, 속세와 멀리 떨어지지 아니 했으나 천고(千古)의 적막을 이루어 정진하기가 알맞으며, 찬 바람 가리우고 따사로운 햇빛을 받는 동남향이니 겨울 나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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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걸 교무
2015.03.2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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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종사의 구도 역정에 대해 〈구산수기〉는 이렇게 이어 간다. 정산종사 항상 말하기를 "내가 전라도를 가야 내 만날 이를 만나고 공부를 성취하리라"하더니, 기어코 뜻한 바를 이루고자 하거늘 부친은 불시(不時)에 토지를 방매하여 진행 차비와 가서 순회 유연(留連, 머물다)할 준비를 해서 백리를 걸어 김천역에 가서 구도의 길을 나서는 청년 아들을 전송하고 돌아왔다.〈구산수기〉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마는 정산종사가 전라도에 와서 먼저 찾은 곳은 강증산교 계통이었다. 가야산에서 증산도 수련인을 만나 기도 체험을 한 정산종사는 증산도 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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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걸 교무
2015.03.2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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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송규 종사의 구도 역정은 치열하게 전개된다.'구산수기(久山手記)'에 따르면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草田面) 소성동(韶成洞) 박실마을에서 본격적으로 이뤄진다. 거주하는 신축가옥이 벽산(碧山) 아래에 있는데, 독서실 뒤 심벽(深僻)하고 통천(通天)한 처소(거북바위를 말함)가 있는지라, 곧 그 곳에 소단(小壇)을 닦고, 매일 석후 삼경(三更, 한밤중)에는 반드시 청수(淸水) 일기(一器)를 받들어 단상에 올리고 기도했다.정산종사 일심으로 빌기를 "송모 후일에 위대한 사업을 이뤄서 명전백세(名傳百世)하여 주시라"고 축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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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걸 교무
2015.03.13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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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송규 종사의 구도(求道) 역정(歷程)은 스승인 소태산 대종사와 흡사하다. 대종사의 구도 역정이 7세시 관천기의상(觀天起疑相)으로 비롯되었듯이, 정산종사의 구도 역정은 8, 9세 어린 나이에 시작된다. 〈정산종사법어〉 기연편 9장에 그 사실이 나와 있다."나는 8, 9세 때부터 보통 인간의 길을 벗어나 모든 것을 다 알고 살 수는 없을 것인가 하고 마음 고통이 심하여, 혹은 집을 뛰쳐 나와 이인(異人)을 찾기도 하고 혹은 하늘에 축원도 하여 9년간을 여기 저기 방황하다가, 다행히 대종사를 뵈온 그날부터는 그 모든 고통이 일소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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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걸 교무
2015.03.06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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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는 교조인 원각성존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상수제자인 정산 송규(鼎山 宋奎) 종사를 만나 완성한 종교이다. 대종사는 정산종사를 친히 맞이해 수위단 중앙 자리를 맡기며 "정산은 우리 회상의 법모(法母)요 전무 후무한 제법주(制法主)다"고 말씀했다.정산종사의 뒤를 이어 종법사를 역임한 대산 김대거(大山 金大擧) 종사는 정산종사 열반 후 성탑을 세우며 그 탑명을 지었다. "오호라 정산종사는 한없는 세상을 통하여 대종사를 받들고 제생의세의 대업을 운전하실 제, 신의는 고금을 일관하시고 경륜은 우주를 관통하시며, 시국의 만난(萬難)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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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걸 교무
2015.02.27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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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송규 종사는 소태산 대종사의 성비문에다 스승을 '백억 화신(化身)의 여래(如來)'라고 천명했다.여래는 석가모니부처님의 십대명호 가운데 하나이다. 석가불의 공덕상(功德相)을 일컫는 십호는 여래(如來)ㆍ응공(應供)ㆍ정편지(正遍知)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이다. 여래는 부처님과 같은 길을 걸어서 이 세상에 내현(來現)한 사람, 또는 여실한 진리에 수순하여 이 세상에 와서 진리를 보여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다.원불교에서는 여래를 대각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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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걸 교무
2015.02.13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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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종사는 원각성존 소태산 대종사 성비문에서 대종사를 '집군성이대성(集群聖而大成)'이라고 천명했다. 집군성이대성은 여러 성인(聖人)의 인품을 합해 크게 완성한 성인 가운데 큰 성인이라는 뜻이다.정산종사는 대종사 성비문에서 대종사의 인품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판탕(板蕩)한 시국(時局)을 당하였으나 사업을 주저하지 아니하시고 완강한 중생을 대할지라도 제도의 만능이 구비하시었으며, 기상은 태산교악 같으시나 춘풍화기(春風和氣)의 자비가 겸전하시고 처사는 뇌뢰낙락(磊磊落落)하시나 세세곡절(細細曲節)의 진정(眞情)을 통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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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걸 교무
2015.02.06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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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종사가 스승인 소태산 대종사의 성비문을 쓰면서 비문의 표제를 '원각성존소태산대종사비명병서(圓覺聖尊少太山大宗師碑銘序)'라 했다. 대종사가 원의 진리를 깨친 성스럽고 존귀한 분이라는 뜻이다. 원(圓)은 둥글고 비어 있으며 무한대이다. 원의 진리를 원불교에서는 일원상으로 표현한다.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아 법당에 모신다.정산 송규 종사는 "귀교는 무신입니까, 유신입니까"하고 묻는 사람에게 "우리는 어디에 따로 계시는 인격적 신은 인정하지 아니하나, 우주를 관통하여 두루 있는 신령한 진리는 이를 인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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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걸 교무
2015.01.30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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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대종사의 법통을 계승한 정산 송규 종사는 스승인 대종사의 성비를 세우며 비문을 친히 지었다. 비문에서 대종사를 광겁종성(曠劫種聖)이라 밝히고 있다. 광겁종성에 대해 〈원불교대사전〉은 이렇게 적고 있다. 광겁종성은 소태산 대종사를 찬탄한 말로 무수한 겁을 통하여 성인이었다는 뜻이다.정산종사는 비문에다 "오호라 대종사는 일찍이 광겁종성으로 궁촌변지에 생장하시어 학문의 수습이 없었으나 문리를 스스로 알으시고 사장(師長)의 지도가 없었으나 대도를 자각하시었으며 판탕한 시국을 당하였으나 사업을 주저하지 아니하시고 완강한 중생을 대할지
교사이야기
송인걸 교무
2015.01.16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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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섭리사상연구원이 발간한 〈세계역사의 대심판〉이란 책이 있다. 이 책에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대종사에 대해 밝힌 글이 있어 고무적이다.석가를 교조로 하는 불교 지류섭리사의 결실로서 종횡적 윤회환생(輪廻還生)으로 서산대사가 오게 되었고 다시 횡적 2대 윤회환생으로 진묵대사가 오게 되었으며, 횡적 3대와 종적 3대의 결실로서 이 땅에 윤회환생하신 분이 소태산 박중빈 원불교 교조이다. 오늘까지의 불교는 득도를 하기 위해서는 속세를 떠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소태산 대종사는 수도한 행처가 평범한 세상이며 고향에서 대각을 하였을뿐
교사이야기
송인걸 교무
2015.01.09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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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회상 원불교를 창건한 소태산 대종사는 어떤 분이신가? 대종사를 가장 잘 알아본 사람은 바로 그 상수제자인 정산 송규 종사이다. 정산종사는 스승인 대종사를 이렇게 표현했다.중앙총부 영모동산 대종사 성탑 아래 자리한 성비(聖碑) 비문에 잘 나타나 있다.원기 38년(1953년) 4월, 원각성존 소태산 대종사 비(圓覺聖尊 少太山 大宗師碑)를 영모원에 세우며 친히 지은 비문에 정산종사 밝히기를 "대범, 천지에는 사시(四時)가 순환하고 일월(日月)이 대명(代明)하므로 만물이 그 생성의 도를 얻게 되고, 세상에는 불불(佛佛)이 계세(繼世)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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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걸 교무
2015.01.02 1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