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사 탄생가 앞으로 펼쳐진 법인광장, 그대로가 한 폭의 수묵화다.아무포(阿無浦), 그 깨달음의 빛 영광

백제불교의 산실 불갑사, 인도 공주의 사랑이 담긴 참식나무 숲, 굽이굽이 고즈넉한 숲쟁이 고개, 기독교인의 피가 뿌려진 순교지. 그렇게 천년 역사의 흔적 속에 자리한 원불교 영산성지 노루목 대각터. 첫 여정 길은 그곳 전남영광에서 시작하고 싶었다. 손도 발도 마음까지 꽁꽁 얼어붙는 것 같은 매서운 추위가 잠시 햇살 한줌을 내어주는 오후, 들도 산도 흰빛이다. 그 들판 사이로 햇살 받은 소나무에서 잔잔한 흰 눈 꽃송이가 내린다.

법성포 불교전래지

먼저 법성포로 향했다. 옛 포구로 입항하는 첫머리였던 작은 '목냉기' 소항월마을이 보인다. 선원들이 조기 파시에서 번 돈을 이 마을 색주가에서 죄다 털리고 말아 목(고비)을 넘어가기 어렵다 해서 목냉기라 불렀다고 한다.
여남은 척의 고깃배들이 한가로움을 더하는 목냉기를 지나 법성진 숲쟁이(명승 제22호)로 나아간다. 숲쟁이에는 산 능선을 따라 늙은 느티나무들이 약 300m에 걸쳐 이룬 숲이 있다. 이 숲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백제 때 아미타불을 함축한 이름, 아무포(阿無浦)라 불리었던 법성 포구가 숲 건너편에 펼쳐진다. 파도치는 포구의 모습이 아름다워 다랑가지(多浪佳地)라 했던가. 법성포구 길가에 굴비 가게가 즐비하다.
영광의 햇빛, 바닷바람, 습도 속에서 걸대에 줄줄이 매달아 놓은 굴비 두름들은 그대로가 법성포 영광굴비의 명성이 된다. 팔 뻗으면 바다 건너편 '불교초전지' 좌우두가 잡힐 듯하다.


법성면 진내리 좌우두. 인도의 명승 마라난타가 중국 동진을 거쳐 백제에 불교를 전하면서 최초로 발을 내디딘 곳, 그 곳에 '불교전래지'가 있다.
그곳에서 정연순(전남 문화관광해설사)씨를 만난다. 그는 영광군이 백제불교의 최초 도래지라는 학술고증(동국대학교)을 통해 문화적 역사성을 구체화하고 2001년부터 추진, 5년여에 걸쳐 조성한 곳이 좌우두 일대라고 소개한다.

그의 안내를 받고 사면대불에 오른다. 사면대불은 아미타불을 주존불로, 관음·세지 보살을 좌우보처로, 그리고 마라난타 존자가 부처님을 받들고, 저 아래 법성 포구를 바라보고 있다. 내년이면 불상 만개를 모시는 만불전이 완공될 예정이란다.

백팔계단을 올라와야만 만날 수 있는 부용루. 벽면에 석가모니의 출생에서 고행까지의 전 과정이 23개 원석에 음각되어 있다.
생로병사에 빠진 인간의 모습과 출가사문의 당당한 모습을 보고 출가할 것을 결심한 사문유관상, 고행수행을 통해 깨달음에 전념하여 피골이 상접한 설산수도상인 고행상, 석가모니의 전생 인연담과 일대기가 생생하게 드러나는 부용루에서 마음 깊은 합장을 한다.

 

초전가람지 불갑사

이제 굽이굽이 뻗은 77번 국도를 타고 초전가람지 불갑사로 발길을 돌렸다. 어느덧 노을빛으로 물드는 시간, 포구도 해를 따라 노을빛이다. 그 노을빛 따라 사그락 사그락 마음도 물들어간다. 채 녹지 않은 눈길이 어둠을 비춰주고 그렇게 한참을 달려 불갑산 기슭의 산사에 닿는다.

종무소를 찾아 기별을 넣으니 반갑게 맞아주신다. 그곳에서 내어주는 우엉근차가 담백하다. 잠시 후 불갑사 주지 만당스님이 편안한 미소로 인사를 대신하며 '상생과 소통'을 이야기했다. 차 공양을 받으며 고즈넉한 산사의 하루가 저문다.

둘째날 일정은 산사의 새벽예불로 시작한다. 도량을 청정하게 하기 위한 도량석(道場釋) 주위로 불전사물의 소리가 가득 채워지면, 땅위의 짐승도, 허공을 나는 새도, 물에 사는 고기도,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까지, 무명(無明)의 잠에 빠져 있는 중생계 모든 중생들이 빠짐없이 깨어난다.

새벽예불과 아침공양을 마치고, 전날 밤에 차로 들어왔던 불갑사 입구를 걸어 나갔다. 걷는 걸음걸음 천천히 호흡을 싣는다. 가람의 경내로 들어서는 사천왕문, 사방에서 불법과 가람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의 위세가 당당하다.
불갑사의 또 다른 특징은 대웅전 안의 삼신불에 있다. 대웅전(보물 제830호)은 서향인데 대웅전 부처는 남쪽으로 돌아앉아 있다. 부처의 옆모습이 보이는 특이한 구조다.

대웅전 측면 분합문 금강저살문. 볍씨모양의 육각테두리를 하고 그 안에 연꽃과 국화, 보리수 문양의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 불법과 보살, 불자들을 지켜주는 무기가 금강저임을 상기하면 꽃문은 그대로 호법문이 된다. 절제와 강건함이 느껴진다.

불갑사에는 참식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인도 공주가 이별의 선물로 준 나무 열매 씨앗이 절 뒤편 군락(천연기념물 제112호)을 이뤘다. 대웅전 우측, 각진국사비 바로 옆에 서 있는 참식나무 한 그루, 매서운 겨울 추위를 더한 그리움으로 견뎌내고 있다.

영산성지

가보고 싶었던 곳, 늘 마음 안에 담겨 있던 곳, 글과 사진으로는 너무도 낯익은 곳이지만 제대로 나서보지 못했던 곳, 원불교 발상지 영산성지에 발걸음이 멈췄다.

대종사 탄생가가 있는 백수읍 길룡리 영촌마을, 마음이 저만치 앞서 달린다. 성지사무소에서 만난 김형진 교무는 이곳 영산성지를 보호하며 정관평을 친환경농법으로 경작해오고 있다. 그를 따라 대종사가 입정에 들었다고 하는 귀영바위 터에 닿는다. 사람이 들어갈 만한 조그마한 굴이 거북이 모양처럼 생겼다 하여 귀영바위다.

영산성지 노루목 대각터. 대종사가 대각을 이룬 그 곳에 '만고일월(萬古日月)'대각비가 세워져 있다. 태양과 달처럼 무궁한 세월에 다함이 없이 비추어 모든 중생을 구원한다는 대도정법의 기운이 지금도 생생하게 울리는 듯 하다. 지극함으로 합장 경례를 올린다.

일원상을 새긴 옥녀봉을 바라보며 찾은 대종사 탄생가. 집 앞으로 펼쳐진 하얀 눈밭, 그대로가 한 폭의 수묵화다. 지붕 이엉의 단촐함이 나무마다 피워낸 설화 속에 고요함의 경지를 더하고 이내 마음이 평온해진다.

이곳에는 최초의 교당 구간도실터와 방언답 정관평, 영산원, 영모전 모두 공도를 위해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사무여한(死無餘恨)'의 정신이 가득하다. 삼밭재 마당바위와 선진포, 법계인증을 받은 9인 제자들의 정성이 깃든 기도봉을 온 마음으로 바라본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영산회상'을 재현할 것이라는 뜻에서 이름 붙여 일군 영산성지 일정을 아쉬움으로 마무리한다.

아미타불을 함축한 이름 '아무포'라 불리었던 영광, 그 곳엔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 진리가 깨달음의 빛으로 서려있다.

▲ 대종사 탄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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