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태규
    원광고등학교
책장을 정리하다 문득 한쪽에 가지런히 꽂혀있는 교무수첩에 눈길이 간다.어느덧 스무권이 넘는다. 부임 첫 해부터 모아둔 것이 이제는 어느 것 보다 소중한 재산이 됐다.
하던 일을 멈추고 한 권씩 펼쳐보니 당시에 맡았던 학생들의 모습이 선하게 떠오른다.
그중 1992년도 2학년 학기말에 서울에서 전학 왔던 김현민(가명)이라는 학생이 기억에 남는다.

첫인상이 좋아 호감이 가는 학생이었는데, 3학년때도 우리 반에 배정됐다. 가정 형편상 아버지는 서울에 계시고 나머지 가족들이 익산으로 이사해 전학 오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3학년이 시작되고 아마 이맘때 인 것 같다.

해마다 그렇듯이 수업 준비를 하며 반 배정이 된 학생들 신상 파악하랴 새 학기 업무 계획 세우랴 한 달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바쁜 시간들이었다.

그런 즈음에 김현민 학생에게 심상치 않은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각하는 횟수가 잦아지는가 싶더니 무단결석이 한 번 두 번 늘어나기 시작해 결국 가출로 이어졌다.

아버지는 서울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시는데 아버지와 마찰이 심해 환경을 바꿔볼 요량으로 어머니와 동생이 익산으로 이사하게 됐고 끝내 여기에서도 잘 적응하지 못해 문제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결국 아버지까지 직장을 옮겨 내려오게 되고 부모님과 나의 간곡한 설득(?)에도 전혀 변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계속되는 가출과 이어서 곳곳에 수소문해 다시 데려오기를 10여 차례.

당시 교직 초년생으로 현민이를 대할 때마다 내가 이 학생을 잘 지도할 수 있을까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진심으로 동생처럼, 조카처럼 마음을 열고 대해줬을 때 서서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는 현민이를 발견하게 됐다.

결국 이렇게 심한 홍역을 치르고 나서 상급학교에 진학하게 됐고 이제는 어엿한 사회의 일꾼이 되어있는 현민이.
언젠가 "그때에 선생님의 관심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 어떻게 돼있을까요?"라며 나에게 털어놓은 말 한 마디가 귓전에 맴돈다.

여러 해가 지났지만 교단에 있으면서 제2, 제3의 현민이를 종종 보게 된다. 오늘날 청소년들을 유혹하는 주위환경, 가정에서의 대화단절, 그리고 입시라는 중압감.
그리하여 쉽게 포기하고 현실을 회피하는 도피성 부적응 학생들이 모두 우리 현민이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힘들어하는 그런 학생들을 볼 때마다 지난 일을 떠올리며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기 위해 고민을 한다.
그리하여 학생을 진심으로 대하고 밝은 얼굴로 먼저 다가서는 것이다.

그리고 따뜻한 위로 한마디, 칭찬 한마디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 또한 어떤 상황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웃음으로 넘길 줄 아는 유연함이 필요함을 배우고 있다.

삶을 살아가며 사회에 나갔을 때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일까?
학점 · 외모 · 부 · 명예 · 권력, 물론 이 모든 것들이 중요하지만 그 모든 것을 넘어 정서적으로 성숙한 인간이 돼야 한다.

사랑스런 꿈나무들아!
비록 어려운 일들이 많지만 당당하게 이겨내며 좀 더 밝고 희망찬 미래를 준비하는 청소년들이 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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