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성당이나 교회를 '생추어리(sanctuary)'라고 하는데, 원래 이 말은 '신성한 곳'이란 뜻으로 피난처를 말하며, 죄인의 피난 장소를 의미하였다. 삼국시대에 마을마다 소도라는 곳이 있었으며, 그곳에서 제천행사를 지냈다. 이 소도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의 역할을 하였으니 죄인들이 소도 안에 들어오면 체포할 수 없는 피난처였다.

고금을 통해 우리에게 피난처가 절실한 것은 사실이다. 〈주역〉 '비괘(否卦)'에서 말하기를 "군자가 난세를 피해서 살되 영화롭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천하가 난세이면 소인들이 부귀영화에 탐닉된 것으로, 군자는 이를 피하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피난처가 필요한 이유를 알게 해준다. 대종사 성비의 글을 보면 그 이유 또한 알 수 있다. 정산종사는 성비에서 대종사의 출현 시대가 '판탕(板蕩)한 시국'이라 하였으니, 나라의 정치가 어지럽고 윤리 도덕이 문란한 세상을 판탕한 시국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의 유래는 〈시전〉 '대아' 장에서 판(板)과 탕(蕩)의 2편이 문란한 정사를 읊은 시였던 것에서 나온 말이며, 판탕으로 부터 벗어날 길이 다름 아닌 '피난처'가 되는 셈이다. 후천개벽의 성자 출현도 이와 관련된다.

일찍이 대종사는 '마음나라의 난리'를 지적하면서 정법이 피난처임을 밝혔다. "우리의 공부법은 난리 세상을 평정할 병법이요, 그대들은 그 병법을 배우는 훈련생과 같다 하노니, 그 난리란 곧 세상 사람의 마음나라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난리라, … 사욕의 마군을 따라 어둡고 탁해지며 복잡하고 요란해져서 한없는 세상에 길이 평안할 날이 적으므로, 이와 같은 중생들의 생활하는 모양을 마음난리라"(〈대종경〉 수행품 58장). 이에 온전하고 평안하여 밝고 깨끗한 마음나라에 피난해 있으라 하였다.

실제 전쟁의 난리를 겪었던 우리로서는 피난처가 필요하였다. 정산종사는 6·25전쟁 때에 대각전과 정미소 등에 피난해 있으면서 말하기를, "아무리 난경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희망을 잃지 말라. 특히 평화의 심경을 놓지 말라"(〈정산종사법어〉 국운편 29장)고 하였으니, 법신불의 위력에 힘입어 정법 대도에 귀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정법대도에 귀의하면 마음난리에서 피할 수 있어 적멸궁에서 정진할 수 있다며, 주산종사는 〈회보〉13호에서 세 가지 난세를 피하라 했다. 첫째 난세는 삼독심에 유혹되어 팔만사천의 마군이 아우성치는 것이요, 둘째 난세는 삼계화택으로 만신창이가 된 상태요, 셋째 난세는 인생사의 난관에 봉착하여 마음을 태우는 것이라 했다. 이 마음나라의 난리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가 정법대도의 적멸궁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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