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아찌는 짠맛이 없게 싱겁게 담가요"

사천시 곤양면에 위치한 다솔사를 찾아드는 길은 행복했다.

봄 바람을 핑계 삼아 인연을 만나러 가는 것이니 만큼 더 흥취로웠다. 양쪽으로 늘어선 소나무 숲길을 지나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4시. 한켠에 위치한 편의점에 들어섰다.

돼지감자를 썰고 있던 양영자(57)씨가 반갑게 맞는다. 일전에 만나 일면식이 있기는 했으나 불쑥 찾아온 손님을 알뜰히 맞기는 쉽지 않다. 그는 작업을 그치고 차 한잔을 건넨다. 색깔을 연하게 끓인 칡차다. 속이 따뜻하다.

"아저씨가 인근 산에서 채취해 둔 것입니다. 등산객들에게는 아무 바람 없이 한잔 씩 내 놓고 있어요."

그러면서 그는 이곳에 정착하게 된 동기를 설명했다. 인연법이라 볼 수밖에 없는 필연이다. 그가 다솔사와 인연을 맺은 것은 30대 후반이다. 그는 차를 대중화하는데 앞장섰던 효당 스님의 마지막 제자로부터 차를 배웠다.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다시 이곳을 오게 됐으니 20여 년 만의 귀환이다. 2년전 가을 무렵, 그는 이곳에 있었다.

"도시에 살 때는 산의 진면목을 알지 못했습니다. 겉모습만 보았기에 그냥 산이었습니다. 그러다 산속에 와서 살다보니 보물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로 인해 그는 산과 인접한 이점을 살려 본격적으로 장아찌 담그는데 매진했다. 40대 초반부터 이어져온 그만의 건강식이 빛을 발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거치는 동안 계속됐다. 이를 위해 봄부터 약용식물과 식용 나뭇잎 채취는 선에 일가견이 있는 남편과 큰 오빠가 담당한다. 몸이 좋지 않아 수술을 했던 큰 오빠는 휴양 차 이곳에 들러 그를 도와주고 있다. 이들은 배낭을 메고 아침부터 점심때까지 산과 호흡한 후 오후에 다시 산에 오른다.

"아저씨와 오빠는 평소 산에 다니면서 약용식물들을 미리 인지해 둡니다. 어느 때 가면 어느 장소에 필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죠. 그래야 빠른 시간 안에 채취를 할 수 있습니다. 욕심 부리지 않고 최소한 필요한 만큼만 채취하는 것 같아요. 오빠는 건강이 많이 호전됐습니다."

그는 이들의 도움으로 돼지감자, 두릅, 머위줄기, 엄나무 잎, 도라지 순, 생강나무 잎, 가지, 상추, 가죽나무 잎, 산초 열매, 죽순, 늙은 호박, 뽕잎 장아찌 등 다양하게 담글 수 있었다. 모두가 건강식이다.

"돼지감자와 늙은 호박은 발효가 잘 됩니다. 돼지감자 건더기는 볶은 소금으로 간을 하고 늙은 호박 건더기 역시 볶은 소금으로 버무리면 열대과일인 파파야 맛이 납니다. 산초장아찌를 담글 때는 조선간장과 멸치액젓이 들어가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간장게장보다 산초장아찌를 더 귀하게 여깁니다"

그의 자상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돼지감자는 봄이 되기 전에 캐야 한다는 것과 호박은 10월에 수확한 것으로 사용할 것을 권했다. 산초 열매 채취는 추석 무렵이 적기라고 밝혔다. 산초 열매는 적절한 시기에 채취해야 아삭거리는 맛이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편이 한마디 건넨다. 지암(59)선생이다. 산초장아찌에 담긴 추억을 풀어냈다.

"산청에 있는 어느 절에 가니 주지스님께만 산초장아찌를 내 놓는 것을 봤어요. 저도 한번 먹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지요. 그 방법을 알아내서 아내에게 부탁을 했지요. 아들도 밥에 산초 장을 비벼서 잘 먹습니다."

그는 남편의 말에 수긍했다. 그만큼 산초장아찌의 깊은 맛을 안다는 뜻이다. 향이 나는 장아찌는 저장을 오래하면 더 맛이 있다는 것이다. 오래 될수록 사람들의 신진대사를 좋게 한다. 더불어 입맛을 깔끔하게도 한다. 느끼한 느낌이 없다. 그는 장아찌 담그는 방법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담그는 비법은 따로 있지 않아요. 담그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맛이 달라지므로 최선을 다합니다. 짠 맛이 없이 싱겁게 담죠. 단순하게 하는데 집에 손님들이 왔을 때 산채 장아찌를 반찬으로 내 놓으면 거의 다 비울 정도입니다. 아마도 짜지 않아서 그럴 것입니다."

여기에는 귀한 손님이나 집안 식구들을 위한 배려가 숨어 있다. 장아찌를 내 놓을 때도 오행에 맞춘다. 이것은 건강을 생각하는 그의 따뜻한 마음씨다.


"목화토금수 오행에 맞춰 장아찌를 담갔어요. 색깔은 초록, 빨강, 노랑, 하양, 검정입니다. 이 오행을 골고루 섭취해야 건강하다고 봅니다. 이것은 저의 기본 생각일 뿐입니다."

이것은 오색(五色)과 오미(五味)를 통해 인체의 오장과 연결된다는 뜻이다. 그의 말을 듣다보면 상생의 원리에 바탕한 건강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산속에서 생활하다 보면 욕심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채취량이 적으면 적은대로 장아찌를 담급니다. 거기에 집중하면 잡념이 없어집니다. 제가 담그는 장아찌를 통해 가족은 물론 손님들이 건강하기를 염원 드립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그는 말없이 다솔사 소나무를 쳐다보았다.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편의점 난로 바깥 연통에서 나오는 연기가 하늘로 피어 올랐다. 나무 타는 소리가 자작 자작 들렸다. 보고 듣는 한 순간이지만 시간은 그대로 흘렀다. 잠시 생각에 잠긴 그의 말이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자신이 처해 진 곳에 잘 적응하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이고 단순하게 사는 것이 건강비결입니다" 부챗살처럼 펼쳐져 있는 다솔사 차밭에서 불어오는 저녁 바람이 오늘따라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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