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선(禪)

▲ 민성효 교무 / 원불교대학원대학교

선이란 분별주착이 없는 각자의 성품 자리를 깨달아 마음의 자유를 얻는 공부로 진공으로 체를 삼고 묘유로 용을 삼아, 외부의 천만경계에도 태산같이 부동하고, 마음의 청정함은 허공같이 지켜서, 모든 분별이 항상 자성을 떠나지 않고 육근작용이 모두 공적영지의 자성에 부합되는 것을 말한다.

선으로 마음을 텅 비운 그 자리에는 빈 공간만큼 새 생명의 물결이 넘쳐 흐르고 이 힘으로 하면 무슨 일이든지 놀라운 성공을 거둘 수 있지만, 통일된 마음, 깨끗한 마음, 맑은 마음, 고요한 마음을 얻지 못하면 원하는 일을 성공하기 어렵다. 그래서 운동선수들도 선을 하고, 예술가들도 선을 하고, 농부들도 선을 하고, 학생들도 선을 한다. 선이란 공부를 하면서도 할 수 있고, 농사를 지으면서도 할 수 있고, 악기를 연주하면서도 할 수 있고, 운동을 하면서도 할 수 있고, 그 밖에 어떤 일을 하면서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은 언제 어디서나 필요할 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

현대와 같이 복잡한 사회일수록 사람들에게 선수행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일정한 시간과 일정한 장소에서 선수행을 하기가 쉽지않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계속할 수 있는 생활선 곧 일상생활 속에서 육근동작을 하는 것 그대로가 선수행이 되는 무시선이 필요하다.

소태산대종사께서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항상 마음을 찾아 길들이는 공부로 무시선법을 말씀하셨다.

배고프면 밥먹고, 목마르면 물마시고, 피곤하면 쉬고, 일할 때는 일하는 것 등 행·주·좌·와·어·묵·동·정 속에서 일심을 지키는 것이 무시선이다.

사람의 마음은 잡으면 있어지고, 놓으면 잠시도 한곳에 머물지 않고 빠르게 움직이는데, 이처럼 천만가지로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집중하여 잔잔한 호수처럼 맑고 고요하게 하는 것이 무시선이다. 또한 잠시도 쉬지 않고 육근을 활발하게 움직이더라도 마음이 항상 편안하고 한가하며, 일상생활이 마치 놀이처럼 쉽고 편해서 경계에 끌리지 않고 본래 마음을 잘 지키는 것이 무시선이다. 길들이지 않은 망아지처럼 제멋대로 날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항상 자성의 정을 떠나지 않아서 일마다 악을 끊고 선을 행하는 것을 무시선이라 할 수 있다.

이 무시선법이야말로 천만 경계 가운데 요란하지 않고 어리석지 않고 그르지 않는 행을 닦는 대법이지만, 닦는 법만 자세히 알고 보면 누구나 오고 가면서도 선을 할 수 있고, 집에서도 선을 할 수 있으니, 굳이 장소를 찾고 일이 있고 없음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다만 무시선 공부법에는 정시(定時)의 선과 정처(定處)의 선 공부도 잘 하라는 뜻이 들어 있으니 좌선에도 공을 들여야 무시선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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