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상의 교무·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
( 논 설 위 원 )
출가의 길은 세속의 애착관계를 끊고 세속의 속박을 벗어나는 가르침을 배우고 수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상에 맑고 향기로운 말을 많이 쓰고 책으로 출판하여 많은 사람들의 마음의 의지처가 되어주셨던 법정스님도 낳아준 부모님을 비롯하여 형제와 친척 등 가족에게 역시 죄인이다고 할 정도로 미안한 마음을 간직했던 모양이다. 부모님을 위시하여 아직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동생들을 남겨두고 출가하신 법정스님도 가족에게 미안하고 죄스런 마음과 그리고 그들을 염려한 마음을 담아 가끔씩 편지를 출가한 후에도 보냈던 모양이다. 그런 법정스님의 편지를 모아 가족 중 한 사람이 책으로 출판하였다는 뉴스를 읽었다.

세속의 인연을 벗어나 출가한 수행자로서 만인의 스승으로 친구로 그렇게 한평생을 살다가신 법정스님의 또 다른 인간적인 면이다. 그렇게 가족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을 떨칠 수 없지만 그래도 출가를 포기할 수 없는 실존적인 고뇌가 인간 속에 내재해 있는 진정성이라고 본다.

불교가 미국을 위시하여 서구사회에 전래된 이래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불교에 대한 관심을 갖고 선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나아가서는 선법을 응용하여 상담이나 교육 및 심리치료 등에도 많은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이제는 불교의 가르침이 단순히 과거와 같은 전문 수행자 중심의 것이 아니라 세속사회에서 꼭 필요한 것이 되고 있다. 과거처럼 심각하게 세속생활을 떠나는 출가라는 의미는 서구사회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이 큰 특징이다.

특히 상하의 위계질서에 대해서는 대단히 거부감을 들어내는데 정신의 영역을 담당하는 종교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수의 대행자로써 교황이나 사제가 갖던 절대적 권위를 거부하고 신 앞에 만인평등의 사상을 주창하면서 개신교를 탄생시킨 역사도 있다.

또한 서구 과학이라는 말로 대변되듯이 과거 미신에 의존하던 치료나 주술적인 방법을 거부하고 소위 현대과학 및 의학을 발전시켜 왔고 그런 과학적 합리적 사유를 대단히 중시하는 문화이기 하다. 그런 영향을 받아 미국 불교에도 고대의 그리고 아시아적인 불교에서 새로운 미국의 혹은 서구의 불교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신앙없는 불교(Buddhism without Beliefs)〉는 스티븐 배첼러라는 사람이 쓴 책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현대 미국지성들이 종교성을 거부하는 새로운 불교이념을 담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미국의 불교의 새로운 방향은 실존적 치유적 그리고 해방적인 불가지론이라고 한다. 즉 전통적으로 대개의 종교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수 없는 것은 믿음으로 들어가게 하는데, 서구 불교는 특히 업과 윤회전생처럼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기 힘든 것을 믿음으로가 아니라 천체물리학, 진화론적 생물학, 신경과학 등으로 해결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새로운 시대와 미국현실에 맞는 새로운 불교를 지향하지만 기존 불교 즉 아시아의 불교에 대한 비판의 잣대가 서구기독교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관계로 불교 고유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경향이 강해서 아직 논란의 여지는 많다.

그러나 현재 미국불교의 방향을 보면 출가의 의미가 희박해지고 재가교단 혹은 거룩하고 성스러운 집단으로서의 종교 전통보다 세속전통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소태산 대종사는 앞으로는 과학과 도학이 겸전하고 출가와 재가가 차별이 없는 그런 형태의 교단을 예시하였고 또한 출세간 법보다 세간 법을 더 밝히고 세상에 유익한 불교를 세운다고 하였다.

미국의 새로운 불교모색이 소태산대종사의 방향과 유사한 면이 많아 보이지만 출가제도의 유지에 대해서는 원불교가 미국에 혹은 서구사회에 정착하기 위해 더 연마가 필요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형식이든 사람으로부터 완전히 '출가'라는 의미와 향수를 뺏어버릴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은 들지만 출가의 전통이 어떻게 미국과 같은 개인주의 민주주의 세속주의 과학과 합리성을 존중하는 사회에서 뿌리가 내릴지는 의문이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