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사경으로 뿌리 깊은 나무 되어

경산종법사님의 신년법설, '강자 약자의 길'이 머릿속에서 살아 숨 쉰다. 나는 과연 강자인가? 약자인가? 강자라면 약자를 위해서 무엇을 했단 말인가? 반면 약자라면 어떠한 진화의 길을 택하여 실천하고 있단 말인가? 자문자답으로 머릿속이 요란해지고 있을 때다.

새해 들어 두번째 법회 날이다.

의타원 송숙정 교무님도 신년법문을 설하신다. 그렇다. '나에게 놓여있는 강자의 길을 걷겠다'는 각오로 '이웃에게 베푸는 정을 나눠야 한다', '나 스스로 강자가 되는 길을 걸어야한다' 그러기 위해 '삼대력 쌓기 공부를 해야겠다'는 각오를 한다. 예회가 끝나갈 무렵 교무님께서 다시 법문사경의 중요성을 설하신다.

벌써 세번째다. 오늘은 단단한 각오로 집에 돌아와 차일피일(此日彼日)미뤄 오던 법문사경 '동네방네' 가족이 됐다. 13명의 회원 중에 13번째다. 대화창을 열고 들어가니 회원들의 진도와 그 속력을 엿볼 수 있다. 모두 젊은 나이인지라 대단한 속력을 낸다. 나의 꺽쇠타법은 부끄러울 뿐이다. 교법의 총설 글씨가 많은 3장을 건너 치지만 따라갈 엄두도 못 낸다.

2~3시간 몰입하여 쳤지만 아직도 까마득하다. '아이고, 어찌 할꼬' 한숨이 절로 새어나오며 그만 둘 생각이 꿀떡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법문 쓰기 공부가 빠른 진도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는 생각으로 참고 견디면서 원불교100년 자신성업봉찬의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말자고 다짐한다. 다시 의자를 고추 세우며 몸을 당긴다. 무려 3시간 반을 꼼짝 않고 친 결과 '악한 사람은 그 앞길이 어둡고 막히리라' 인과품 33장을 끝으로 실시품으로 입문한다.

'응, 이만하면, 상당히 따라갔겠지?' 생각하고 오랜만에 우리 마을 '동네방네'를 노크한다. '이무슨 번갯불의 장난인가?' 동네방네 식구들 모두가 나 보다 100m는 더 넘게 앞서 달린다. '빨리만 달리면 뭐람. 실속 있게 공부하며 달려가자' 마음을 고쳐먹는다. 법문을 써 내려가며 오늘의 돌아가는 이치와 대조하니 대종사님의 성안이 훤히 드러난다. 사자성어 대기만성(大器晩成),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성공한다'를 마음속에 새겨 쓰고, 소걸음을 내 딛는다. 뚜벅 뚜벅 소걸음에 수레바퀴가 달렸나 보다 예전을 마치고 정산종사 법어로 들어간다.

법문사경에 입문한지 2개월이 지난다. 진도표를 본다. 달성도 82.12%에 흡족한 미소를 드리우고 있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그렇지만 또 하나의 경계가 내 눈을 가로 막는다.

3월부터 학교 강의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다. 거기에 교도회장으로서 교당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갈등이 엄습한다. 나의 나빠진 환경을 탓도 해본다. 자연 사경도 흔들린다.

결국은 교도회장직을 내놓기로 한다. 그러나 선생님과 교당 어른들께 상의도 해 보지만 해결책은 없다. 뿌리 깊은 나무는 흔들림이 없다. '이러면 안 돼.' 스스로를 자책 하면서 법문사경에 문제해결을 맡기기로 마음을 굳힌다.

그렇다. 법문사경이 흔들리는 내 마음을 잡아준다. 선연들이 이뤄 놓은 영원불멸의 전서다. 새 회상의 역사가 나를 성업봉찬의 일꾼으로 다시 끌어들이고 있다.

법문사경으로 삼학공부에 매진하라는 메시지를 받는다. '진공묘유의 수행문, 공부의 요도, 삼학 팔조와 인과보응 신앙문이 내 성업봉찬의 참다운 길을 밝혀주고 있다.

어느덧 법문사경 입문한지도 2달을 지나 3달째에 접어든다.

라일락 향기가 코끝을 스치는 4월이다. 법문사경 진도도 교단의 산 증인 교사의 마지막 장 반백년의 결실에 다다른다.

오~오~ 사은이시여! 이 어설픈 자에게도 인내와 끈기를 내리시어 반백년이 아닌 일원세계 한 일터 한 일꾼으로 개교 백주년 성업봉찬에 참여하는 법문사경 완결을 보내주심에 감사하다.

드디어 법문사경 완결! 성탑의 종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인내와 끈기로 이룩한 이종소리는 내 자신 성업봉찬의 메아리가 되어 높이높이 치솟는다.

< 월명교당 / 황혜범 교도>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