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문답〉한국 불교의 한 방향제시

마음인문학연구소 장진수 HK연구교수(본사전문기자)가 한국불교선리연구원 월례발표회에서 '연기와 성기의 관계, 〈화엄경문답〉을 중심으로' 18일 서울 선학원에서 발표한 것을 요약한 것이다.


연기(緣起)와 성기(性起)는 화엄교학의 중심 개념이다. 의상(義相, 625-702)의 스승 지엄(智儼)은 화엄의 독자적인 '법계연기설(法界緣起說)'을 전개한다.

법계연기설의 성립배경에는 '성기설'이 자리하고 있다. 성기설은 화엄교학에서 발전해 선불교 등 이후 실천사상에 영향을 주고 있다.

연기와 성기를 논할 때 중시된 문헌으로 〈화엄경문답〉이 있다. 최근 연구결과 법장(法藏) 저술로 알려졌던 이 문헌이 의상의 문헌으로 밝혀져 주목받고 있다.

〈화엄경문답〉은 먼저 삼승과 일승의 연기설을 대비하고 있다. 지론교학에서는 '연집설(緣集說)'이 주장되는데, 정영사 혜원(淨影寺慧遠)은 유위(有爲), 무위(無爲), 자체(自體)의 3종연집설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자체는 일반적인 여래장(如來藏)의 의미를 밝힌 것이다. 다만 자체연집을 다시 유위, 무위, 자체로 나누고 있는데, 여기서 자체는 곧 '여래장자체'를 의미하고 있다. 여래장은 여래가 함장된 상태, 아직 여래가 발현되기 이전의 '인위(因位)'이다.

반면에 '여래장자체'는 부처가 성취된 '과위(果位)'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사상적으로 여래장사상에서 성기사상으로 나아가는 흔적으로 여겨진다.

지엄과 의상은 '자체'를 '성기'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화엄경문답〉이나 〈총수록〉에서는 '자체불(自體佛)'에 대한 논의로 발전된다.

지엄의 법계연기설은 기존 연기설을 포괄하려는 의도에서 설해진 것으로 염문(染門)과 정문(淨門)으로 구성된다.

염문은 지론의 연집설과 섭론의 유식설까지도 포괄한 것으로 여겨지며, 정문은 부처가 증득한 청정한 세계(唯淨)를 그대로 드러내고자 새로이 설정된 것이다.

〈화엄경문답〉은 '법계연기'라는 말은 사용하지는 않는다. 삼승연기와 일승연기를 대비하고 있을 뿐이다.

삼승과 달리 일승연기는 연의 집산에 의지하지 않는다. 중생의 필요에 따라 연의 집산이 설해진 것일 뿐이다.

'법'도 연을 따라서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있다'고 하든지 '없다'고 하든지 연을 따라서 그렇게 말할 뿐이다. 유와 무가 '정해진 것'이 아니다.

반대로 '정해지지 않은 것'도 아니다. 고정된 분별과 주착을 경계하고자 함이다. 연을 따르므로 '자처(自處)'가 없고, 자기 처소(입장)가 없기에, 옳고 그름도 없다.

자처가 없으므로 주할 곳도 없다(無住). 그러므로 일승연기를 무주연기(無住緣起)라 한다.

〈화엄경문답〉은 일승의 입장에서 연기와 성기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연수(=연기)가 없으면 성기가 없고, 성기가 없으면 연수가 성립할 수 없다.

그렇다고 별개의 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연수는 연을 떠나서 성립할 수 없으나, 성기는 연을 떠나도 줄어들지 않으므로 서로 차이가 있을 뿐이다.

〈화엄경문답〉과 마찬가지로 〈법계도〉도 연기와 성기를 병립하고 있다. 〈법성게(法性偈)〉에서는 증분(證分, 성기)과 교분(敎分, 연기)을 병립하고 있다.

증분은 '법성'으로, 연기분은 '진성(眞性)'으로 설명할 뿐, 둘이 별개의 체를 가진 것은 아니다. '법'은 모든 법(諸法)을, '성'은 움직이지 않음(不動)을 말한다.

'법성'은 부동하고 무주이므로, 일미진(一微塵)도, 수미산도, 오척신(五尺身)인 현재 나의 몸도 그대로 법성이다.

'기(起)'는 법성이 분별을 여윈 보리심에 그대로 드러나 있기에 '일어난다(起)' 한 것이다.

법의 본성이 그러하므로 '일어난다' 한 것이지 별도의 일어나는 모습(起相)이 있어서 '일어난다' 한 것은 아니다.

이상 의상은 법의 본질을 성기로 파악하여 현실 긍정의 강한 실천적 경향을 견지함으로써 한국불교의 한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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