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700여리, 생명 평화의 마음으로

지리산에 깃들어 사는 모든 아름다움을 위해 길을 나서고자 합니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더 많은 것을 먹고,
더 많은 것을 입으려는 욕망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길을 잃었습니다.
하여 동서고금 길을 찾는 사람, 길을 닦는 사람이라 불렸던 성직자들이
생명, 평화의 길을 찾아 나서고자 합니다.
먼저 길을 찾아 나섰던 이들이 찾아 들었던 지리산을 돌며
오래된 미래의 길을 찾기 위해 <지리산 천일 천인 순례>를 제안합니다.


▲ 지리산종교연대 한성수목사, 김광철목사, 고세천교무, 김교원예비교무, 홍현두교무(왼쪽부터)
지리산종교연대(원불교, 천주교, 불교, 개신교)에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과의 사이에 만들어진 앙금을 걷어내자 하였다. 그리하여 꽃피는 삼월에 시작하여 천일동안 지리산 둘레를 걸으며 기도를 하자고 제안되었다. 하루에 4대 종단 성직자 한 사람씩 이어가며 걷는 길, 〈지리산 천일 천인 순례〉길이다.

4월26일 목요일, 그 길을 한성수 목사(순천 하늘씨앗교회), 김광철 목사(구례 수평교회), 김교원 예비교무(원불교대학원대학교 1학년), 고세천 교무(남원교당), 홍현두 교무(동원교당)가 나섰다. 악양 대축마을에서 섬진강변을 따라 화개장터까지 걷는 길이다.

봄햇살이 따스했다. 봄바람에 연초록 나뭇잎이 반짝거린다. 바람 끝이 싱그럽다. 저 연한 속살로 두꺼운 껍질을 어찌 뚫고 나왔을까.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듯, 스스로에게 가장 잘 맞는 방법으로 꽃을, 그리고 잎을 피운다.

애환이 많은 지리산이다. 이념을 생명보다 앞세웠던 지난날,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던 앙금을 걷어내야 한다고 일행은 생각한다. 지리산은 깃들어 있고, 앞으로 깃들 뭇 생명들의 것이다.

그럼에도 마치 제 것인양 지리산에 쇠말뚝을 박으려는 세상의 어리석음을 속죄한다. 지리산 둘레에서 지리산을 바라보며 걷고 걸으면서 생명을 생각한다. 침묵으로 걷는 첫 번째 길, 악양 대축마을에서 평사리 공원까지 걸은 길, 그 길은 생명의 길인 것이다.

평사리 공원에서 낮밥을 먹었다. 손수 준비해온 도시락을 서로 나눈다. 매실장아찌와 김치, 2찬의 도시락 밥이 꿀맛이다.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 자연의 소리는 들으려는 자에게만 들리는 법인 듯 했다. 이 모든 자연의 소리가 어우러진 자연 속 밥상은 일행에게 남부럽지 않은 왕후의 밥상이다.

두 번째 길을 걷기 전, 일행은 명상을 한다. 이들은 지리산 정상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기쁨이 아닌, 하심의 자세로 지리산 언저리를 더듬으며 지리산을 바라보려 한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길을 걸으며 불통의 시대에 소통에 대해 고민하려 한다. 소통이란 신뢰가 밑절미이기에, 신뢰란 들음에서 난다는 경전을 실천하며 묵언으로 걸으려 한다. 침묵으로 그들은 두 번째, 평화의 길을 걸었다.

남원교당 고세천 교무는 성실한 노동만으로 세상을 사는 이 땅의 가난한 이웃들에게 생명과 평화의 마음으로 찾아 나서는 이 길이 어떤 울림일지 자문했다. 혹여 '가진 자의 여유'가 아닐까. 물리적인 시간마저 사치일 수 있는 이 땅의 근로자들, 서민들, 이주 노동자들에게 어쩌면 자신이 걷는 이 길은 호사일 것 같다는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침묵으로 걷는 두 번째 길, 잠시 휴식을 갖는다. 햇살 받은 섬진강이 반짝였다. 은색 물빛이 곱다. 두 번째 휴식시간, 일행은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공정한 사회를 이야기 한다.

세 번째 길을 걷는다. 4개 종단에 몸 담은 종교인들이 지리산을 위해,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이다. 일행은 천일동안 지리산에 깃들어 사는 모든 피조물들에 감사하는 마음과 마음을 이어 걷고자 한다.

1킬로미터 남짓 남은 화개장터, 상춘객들을 위한 음악소리에 자연의 소리는 묻힌 지 오래다. 사회가 진보하면 희망이 이뤄진다고 생각했다. 경제적으로도 많은 것들을 이뤘다. 많은 부분이 변화하고 이뤄졌으니 좋은 세상이 되어야 하지만 세상을 그렇치 않다. 개인의 삶도 평화롭거나 행복하지 않다.

김광철 목사는 구제역으로 삼백만마리의 생명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길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관계를 단절하는 한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음을 그는 안다. 길을 찾는 사람들, 구도자 생명이란 무엇인가. 세 번째 길에서 그는 생명의 가치를 중심에 놓고 살아가고자 하는 대안적 모색을 생각했다.

반생명적인 암담한 세상에서 생명을 살리는 작은 불씨를 키워내고 싶다. 그가 걷고 있는 세 번째 길은 생명의 작은 불씨를 살려내고자 하는 '기도'의 길이다.

악양 대축마을에서 평사리공원을 지나 화개장터까지에서 11킬로미터를 걸었던 길, 때론 지친 발걸음을 안아주는 그늘에 감사하고, 때론 마음을 위로하는 한 줄기 바람에 감사하며, 생명 평화의 마음으로 길을 찾는 사람들이 걸었던 그 길에 생명, 평화, 기도가 있었다.
▲ 참게를 잡기위한 불법어망을 걷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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