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가 이철수, 스승 서화세계 전해
금강경 문구, 불취어상 10년 공부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삶을 기리는 수묵전이 17~22일 전주역사박물관에서 열렸다. 무위당은 60~70년대 원주에서 천주교 지학순 주교, 김지하 시인 등과 함께 농촌 광산지역의 농민과 노동자들을 위한 교육, 협동조합운동을 펼치며 낮은 곳에 임했던 인물이다.

21일 초청된 판화가 이철수씨는 '무위당의 서화와 삶의 향기'라는 주제를 통해 "무위당의 그림이나 글씨는 평소 해서나 행서처럼 또박 또박 편한 글씨를 썼지만 말년에는 무뚝뚝한 전서체를 즐겨썼다"며 "단순하고 명료한 글씨는 기교보다는 상대방의 마음에 다가가는 붓질로 바꿨다"고 회고했다. 무위당의 난 그림 역시 '삼절지교'라는 말로 칭송할 정도로 뒤틀리고 정교한 붓질로 유명하다.

이 작가는 "20대 말에 이현주 목사와 함께 만났을 때의 무위당 서화는 군고구마장사의 메뉴판처럼 생활 속에서 우러난 그림이나 글씨였다"며 "그렇지만 생활 속에 꼭 필요에 의해서 쓴 글씨였지만 성심을 다한 최고의 경지였다"고 평가했다.

해월 최시형의 사상과 세계관에 많은 영향을 받아 일명 '걷는 동학'이라 불리운 선각자였던 무위당은 정작 가톨릭 신자이면서 불교와 유학, 노장사상에도 조예가 깊었다. 이런 무위당을 이 작가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 칭했다.

그는 "무위당이 마지막 암투병을 할 때 우편으로 보내 온 것이 금강경의 '불취어상(不取於相)'이었다"며 "'눈에 보이는 알음알이로 알아지는 것을 배우려 하지 말라'는 부연설명이 들어있었다"고 말했다.

무위당이 불취어상을 보낸 연유는 앞뒤 말이 중요하니 그것을 새겨 읽으며 살라는 뜻이었음을 자각한 그는 "10여년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놓고 공부했다"고 부연했다.

그는 무위당의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저파비(猪怕肥 - 돼지는 살찌는 것을 두려워한다)'를 꼽았다. 작은 글씨로 그 뒤 대목은 인파출명저파비(人怕出名猪怕肥-사람은 이름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고 돼지는 살찌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로 되어있다. 그는 "돼지가 살찌기 시작하면 도축장에 들어갈 날이 가까웠다는 뜻"이라며 "이 글을 새긴 것은 읽는 사람들이 욕심내서 유명해지려고 마음을 먹으면 죽는다는 무서운 뜻이 들어있다"고 강조했다. 돼지의 목숨 잃는 것과 사람의 출세하는 것을 하나로 보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무위당은 몇 글자 안 쓴 작품이지만 두고두고 공부가 되고 스승이 되는 글씨를 남겼다고 그는 소개했다.

난생 두 번째 서화전은 정계 3김씨가 다 관람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는 그는 "꽤 많은 작품들이 팔려 돈이 제법 들어와서 금전출납한 것을 내 보이자 무위당은 열어보지도 않고 그대로 '한 살림 생협'에 갖다 줘라. 또 어느 때는 선생님의 글씨 값으로 놓고 간 봉투를 칠기공예하는 어려운 후학을 찾아가 이런 저런 이야기 하는 동안 한눈을 판 사이에 슬그머니 놓고 그냥 오는 것이 무위당의 계산법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앞으로 받고 옆으로 줘'라는 무위당의 계산법은 정의(情誼)롭고 사람의 마음을 덧내지 않는 삶의 방식이라고 설명한뒤 "무위당을 추모하는 자리보다 얼마나 잘 살아야 무위당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의 실천이 중요하다"라고 말하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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