於有差別境에 入無差別定을 謂之坐요 於無差別境에 視有差別智를 謂之禪이니

(차별있는 경계에서 차별없는 정에 들어가는 것을 좌 공부라 하고, 차별없는 경지에서 차별있는 지혜를 보는 것이 선 공부이니)

좌와 선의 공부를 하려면 먼저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 하나의 자리를 알아야 된다고 본다. 만법의 근원인 무극 태극의 일원상 자리를 알아야 우주만유의 본원인 성품을 아는 것이다.

태극은 생생약동하여 끝없이 창조하며 변화하는 묘유의 기운이요. 무극은 여여자연한 밝고 밝은 영지(靈知)이다. 생생 약동하는 기운과 밝고 밝은 영지가 성품이며 법신불 일원상이다. 우주 만유가 모두 하늘과 땅에 그 수명을 의지하고 있다. 천지의 생기와 밝음이 곧 성품이다.

마치 땅이 움직이지 않는 것 같으나 그 생생약동하는 영지와 기운에 만물이 의지하여 살고, 하늘이 비어 있으나 그 기운과 밝음을 통해 만물의 이치가 밝게 통하여 살고 있다. 하늘과 땅과 같은 부동의 질서와 밝음으로 마음 수행의 표준을 삼는 것이 정혜쌍수의 공부이며 천지와 합일하는 공부이다. 하늘과 땅과 같은 영지와 기를 닮아가려는 공부가 천지 합일의 공부이다.

〈대종경〉의 성리품에 본래 완연하여 하나인들 돌려보낼 곳이 없는 자리라고 밝히고 있다. 차별없는 자리에 돌아가는 공부가 제일 중요한 마음공부임을 밝히고 있다.

바다의 물도 나누면 헤아릴 수 없이 많으나 그 근본은 한 가지 물이요, 수많은 고기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으나 한 기운으로 살아가고 있다. 소태산은 바다의 물과 고기 수를 다 헤아릴 수 있다고 하였다. 무한 무수 무변의 세계라도 근본은 본래 하나이다.

하나인 자리는 만유를 포함하고 있어 그 하나에 들어가면 만유와 소통한다. 하나에 들어가 모두에 두루 통하는 것을 정(靜)에 들어갔다고 한다. 적적성성 공적영지가 서로 떠날 수 없는 것이다. 하늘과 땅이 서로 떠날 수 없는 것과 같다. 정하면 동하고 동하면 정한다. 영지가 있으면 기가 있고 기가 있으면 영지가 있다. 기질이 있으면 심성이 있고 심성이 있으면 기질이 있다. 부동의 공부를 하면 곧 청정함이 생기고 청정한 공부를 하면 부동의 기운이 어린다. 수승화강이 되면 식망현진이 되고 식망현진이 되면 수승화강이 된다.

정할 때는 정 공부를 잘 하는 것이 동 공부의 밑천이 되는 것이요, 동할 때 동 공부를 잘하는 것이 정 공부의 밑천이 되는 것이다. 차별있는 자리와 차별없는 자리가 둘이 아니요 하나이다. 차별없는 자리에서 공부를 잘하면 차별있는 자리 공부가 잘되는 것이요, 차별있는 자리에서 공부를 잘하면 차별없는 자리의 공부가 잘 된다.

삼학병진의 수행이 정혜쌍수의 무시선 공부임을 깨우치게 한다. 동과 정이 떠나지 않는 정혜쌍수의 선이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는 삼학병진 선이다. 삼학 병진은 외정정이 되면 내정정이 되고 내정정이 되면 외정정이 잘되는 공부이다. 정기훈련이 잘되면 상시훈련도 잘되고 상시훈련이 잘되면 정기훈련도 잘되는 동정 간에 빈틈없는 한가로운 선 공부를 소태산은 가르치고 있다.

<정귀원 교무/ 경장교당>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