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따라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물결이 있는 것 같다. 거창한 것도 있고 소소한 것도 있지만 요즘 진행되는 대학생들의 '반값 등록금 촛불 집회'가 그런 예인 듯하다.

가끔씩 대학들을 가보면 항상 플래카드에 등록금에 관한 여러가지 말들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등록금이 매년 인상 된 것을 비율로 표시하고 학생들은 등록금 인상에 대한 반대의 입장을 표시해 왔다. 난 그 표를 보며 참 해도 너무한다 싶었다. 등록금이 매년 눈에 띄게 올랐던 것이다. 예전에 시골에서 아들 대학 보낼 때 아끼던 소를 팔았다지만, 이제 그런 이야기는 낭만의 언덕 너머에서나 들리는 듯하다.

먼 옛날 공자님께서의 〈대학(大學)〉이란 책을 집필하셨는데, 그 의미가 현재 우리가 다니는 대학의 의미와 똑같다. 요새 대학생들이 한 번쯤 봐도 좋겠지만 아무튼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다.

'大學之道는 在明明德하며'

그러니까 해석하자면 대학을 가는 이유는 밝은 덕을 더 밝히기 위함이며 라고 볼 수 있겠는데 흔하게 넘어갈 수 있는 구절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2500년 전에 이미 공자님은 대학을 가는 목적을 밝혀놓은 감동적인 구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요즘의 우리는 대학을 왜 갈까? 우린 취직하기 위해 간다. 말하자면 돈 벌기 위해 가는 것이다. 사회가 대학의 목적을 돈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대학도 학생들을 돈으로 본 것이다. 그러니까 매년 그렇게 어이없는 등록금 인상률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 사태는 사회적 책임의 문제이기도 하며 대학의 방향을 결정하는 자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무조건적으로 대학을 지향하는 학생들도 문제의 원인이기도 하다. 물론 우리의 사회는 대학을 안 나오면 먹고 살기 힘들다는 암묵적인 룰이 존재하기 때문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대학들은 해도 너무 했고, 이제는 다시금 촛불시위로 이어져 반값 등록금 공약은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물결에 포함되어 있는 듯하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 러시아에서 연극대학을 2년 다니다 말았다. 졸업을 못 했으니 학력으로 치면 고졸이다. 그러나 대학의 졸업장을 떠나서 졸업장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내 나이가 서른인데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가난하다고 볼 수 있다. 통장의 잔고로 보면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적인 관점이고 진리적인 눈으로 보면 나는 매우 풍족한 사람이다. 진리적인 입장에서 보면 누구의 인생도 못난 삶이 없고 모두가 풍족하고 완전한, 아름다운 인생이다. 물론 사람이 핑계를 대자면 한이 없다. '나는 나이가 어려서', '난 늙어서', '난 가난하니까', '난 못생겨서'등등 내가 희망을 갖지 못하는 이유를 찾자면 한이 없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비관적으로 흘러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사람이 좋게 변화되고 희망을 찾고, 그냥 숨만 쉬어도 성불하면 종교나 책이 왜 필요 할까? 그렇기 때문에 삶은 재밌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돌리는 노력을 하고 마음공부를 열심히 해서 진리적인 관점으로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등록금문제는 문제도 아니게 될 정도로 사소해 질 것이다. 우리는 각자를 사회적, 경제적인 눈으로 보지 말고 진리적, 사은님의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봐야 한다. 그래서 희망을, 은혜를 우리 마음 깊이 단전에 넣어 놓고 든든하게 지낸다면 대학생들의 많은 경제적 문제도 해결될텐데 안타깝다. 어서 빨리 원불교의 사회적 교화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대학생들이 반값등록금을 실현하면 좋겠지만, 대학을 초월해 버리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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