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최병헌 명예교수
개혁적 사고, 현대불교계의 역사적 과제

최근 불교관련 학계는 한국불교의 정체성 찾기에 몰두하고 있다. 이에 부응하듯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에서도 5월28일 올해의 부처님오신날 봉축세미나에서 '한국불교사,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를 내걸었다.

 

기조발제로 나선 최병헌 서울대 명예교수는 "불교의 근본정신은 변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 구체적인 모습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화해 왔다"며 통사적인 관점에서 한국불교사를 진단했다.

그는 먼저 신라시대는 인도와 중앙아시아, 중국을 통해 세계적인 종교와 철학을 갖추어온 불교가 "전륜성과와의 결합을 통한 국가이념으로 정착된 불교가 왕권강화와 국가발전이라고 하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했다"고 보았다.

그는 통일신라시대에 대해 "원효의 회통불교 철학과 진속무애(眞俗無碍)의 실천행, 그리고 의상 화엄종의 원융 조화사상과 화합의 교단, 그리고 대중포교사들에 의한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대중불교운동이 사회·문화적 통합을 위한 역사적 과제에 부응하는 형태로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권력의 해체가 이루어진 신라말에는 선종의 9산선문이 "고대국가의 사회적 모순이나 지역적 편중을 극복하고 지방문화 역량의 증대를 위한 추진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고려불교에서는 정치철학으로 유교가, 국가종교로서 불교가 양립하여 '지배이념으로서의 역할을 분담하여 보완'하는 체제를 갖추었다고 제언했다. 하지만 "교단체제는 소수의 엘리트 승려들로 구성되는 교단의 상부구조에 국한된 것이고, 교단의 하부구조라고 할 수 있는 대중 승도들은 포함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가운데 불교계에 대한 비판과 반발로 수선사와 백련사의 결사 운동이 일어났다. 특히 수선사의 지눌은 교단체제에서 벗어나 혁신적인 결사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또한 선종의 입장에서는 실천적으로 화엄사상을 받아들이는 선교통합을 추진하였다"고 강조 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임제종의 간화선을 받아들임으로써 고려불교를 새로운 단계로 전개시켰다.
조선시대에는 억불숭유정책으로 인해 불교가 산중의 불교가 되었지만 현실정치의 운영과 사회적인 윤리도덕 문제를 위주로 한 유교는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인 죽음과 사후문제에 대한 해답을 줄 수는 없었다고 그는 제시했다.

그는 "피지배층인 일반 백성들은 가혹한 억압속에서도 여전히 불교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임진왜란 당시 군승들의 눈부신 활약이 있었지만 승려들에 대한 천인취급과 양반유생들에 의한 사적인 침탈은 근대초기까지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불교의 역할과 교단의 존립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는 휴정(서산대사)과 그 법손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선정 수행의 가풍은 점점 사라지고 강학과 염불이 혼합됨으로써 선종은 형태만 남았다.

그는 근대 식민지 하에서 두 가지 관점에서 보았다는 것을 밝혔다. 첫째는 일본불교가 조선의 개항초기 침략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면서 한국의 불교를 전면적으로 장악하여 자신의 종파로서 국교화 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총독부의 식민지 통치에 있어 한국승려를 직접 내세우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 본말사 제도를 수립하여 불교계의 인사권과 재정권을 조선총독이 완전히 장악하게 하였다.

전시동원체제 하에서는 분할통치방식에서 통일기관 설립의 방향으로 불교정책을 변경하여 총본산의 설립을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지원하여 1941년'조계종총본사태고사법'을 제정 하였다.

그러나 이는 종단의 법통을 태고보우와 연결시키려는 의도와 고려시대 선종의 대표적 종파였던 조계종의 전통을 계승하려는 의지의 소산이었지만 불교계의 자발적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한 총독부의 고도의 술책이자 통치의 필요성에 의해 '새로 창단된 신흥종단'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의 불교정화 정책으로 1962년 4월 비구승 주도의 통합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의 발족과 1970년 5월의 대처승에 의한 한국불교태고종의 창립 과정에서 휴유증을 남기게 되었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조계종을 비롯한 현대불교계의 역사적 과제로 "우선 자기 성찰과 반성, 근본적인 개혁의식이 요구되며, 그것을 토대로 하여 일제 식민지불교 잔재의 청산, 교단운영체계상의 구조적 모순의 개혁, 정치권력으로부터의 교단의 자주성 확보와 어용적 체질의 극복, 세속화의 극복과 청정 승가의 구현, 파벌싸움의 지양과 화합 승가의 구성, 현대불교로서의 교학체계와 수행방법의 계발 등의 문제가 추구되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결과적으로 불교사의 전개과정은 끊임없는 불교교학과 수행방법의 계발과정이었던 것이고, 곧 자기변화의 추구과정이었다"며 한국불교사 전체를 긍정적으로 바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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