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이 미국대학 입학원서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중 에세이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12학년이 되면 주제선정과 함께 자기 자신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어야한다는 중압감에 여타 다른 학생들도 많은 고민을 한다.

큰딸도 서점에서 책과 자료를 수집하고 경험담을 정리하는 등 많은 노력을 했다. 제출시기가 다가오자 나는 걱정이 되어 원고를 보여 달라고 했다.
그런데 딸아이는 뜻밖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주제를 바꿔서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당황해서 '무슨 소리냐 시간이 없는데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딸은 태연하게 '엄마 걱정하지 마 내가 가장 잘 알고, 좋아하고, 자랑스러운 주제여서 그냥 있는 그대로 쓰기만 하면 돼'라고 했다. 더욱 조급증이 나서 말해보라니까 웃으면서 '엄마야'라고 하는 게 아닌가.

어이없고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지만 내 눈엔 눈물이 소리 없이 흐르고 있었다. 고맙기도 하지만 미안하기도 하고 정말 내가 이런 칭찬을 들을 만큼의 엄마일까? 엄마라는 지위로 함부로 하기도 하고 섭섭하게도 했을 텐데. 두렵기까지 했다.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왜 하필이면….

그 에세이는 끝내 읽어보지 못하고 제출이 됐다. 영어가 안 되는 엄마를 위해 번역을 해서 보여줬는데도 지금까지 읽지 못했다.

혹 딸의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 수정을 해야 될지도 모르고 더 좋은 엄마로 영원히 기억돼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무거웠기 때문이다.

뿐 만 아니라 자녀 양육 태도는 부모로부터 받은 그대로 대물림 할 수 있는 엄청난 일이기에 딸에게서 표현된 내 모습에 걱정이 앞섰다.

한국에 돌아와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대학에서 합격통지서와 함께 장학금 제의가 왔다. 정말 특이하고 인상 깊은 에세이를 읽었다는 멘트와 함께….

어린이집을 운영하다보니 많은 상담을 하게 된다. 이들은 한결같이 육아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그럴 때마다 '정말 정답이 있으면 좋을 텐데요'하고 웃어준다.

나는 알고 있다. 엄마라는 자리가 얼마나 힘들고 중요한지를, 그리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지극한지도….

허나 분명하고 단호하게 강조하는 말이 있다. 누구에게나 단점과 장점이 공존을 한다는 사실이고 아이의 타고난 성품과 기질을 이해하고 마음 편히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아이가 다 똑같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미국에 사는 아이, 한국에 사는 아이, 도시에 사는 아이, 섬에 사는 아이가 다 똑같을 필요도 없거니와 모든 걸 다 잘할 수도 없고 잘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세상은 다양한 그들을 얼마든지 수용할 만큼 넓다. 공장에서 찍어내듯 다 같이 마음에 드는 그런 아이를 만들 수는 없지 않는가. 더욱이 부모의 욕심만으로는….

사람은 저 마다의 자질과 개성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미 수억 개의 정자 달리기에서 일등 해서 태어났지 않는가.

우린 얼마나 칭찬과 격려를 하고 그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있는가 부터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우리가 관심 갖고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이 이 세상을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아이가 가진 개성과 장점을 잘 살려주고, 다양성을 경험하게 하고,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그리 쉬운가. 나도 자신이 없어 딸의 에세이도 읽지 못하는 못나고 소심한 엄마이지 않는가.
오늘도 나의 조석 심고와 기도의 대부분은 두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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