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부터 한시를 지었다지만 전하는 것은 14,5세 무렵에 처가에 가서 지었다는 연구(聯句) 2구가 겨우 남아 있습니다. 연구란 돌림노래처럼 몇 사람이 돌려가며 지은 싯구입니다.

海鵬千里翶翔羽(해붕천리고상우) 바다 붕새로 천리를 날아갈 만한 깃을 가졌건만 籠鶴十年蟄鬱身(농학십년칩울신) 조롱에 든 학으로 십년 세월을 갇혀 지냈네.

형식으로는 전·후구가 대구를 이루었고 의미상으론 대조가 되었습니다. 이상(해붕)과 현실(농학)의 어긋남이 바로 소년 정산을 우울증으로 몰아갑니다. 싯다르타의 출가를 막으려고 결혼을 서둘렀던 카필라성의 전설처럼 13세의 조혼으로 울타리를 쳤지만, 결코 가정에 묶일 정산은 아닙니다. 그 경륜이 얼마나 호대했는가! 자그마한 키에 동안 소년 같은 정산이지만, 그의 호연지기와 정신세계의 스케일은 언필칭 우주요 만유요 천지요 고금이었습니다.

소태산이 그랬던 것처럼 정산도 격식 갖춘 풍월을 기피했습니다. 거의 유일하게 남은 칠언율시(남원교당 봉불 축시)를 보면, 정산은 율시 양식을 완벽히 소화하는 탁월한 작시능력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정산은 스승 소태산의 선례를 따라, 극도의 기교를 요하는 금체시의 정형성을 외면하고 도덕적 종교시와 선시적 주문을 짓는 데에 만족합니다.

종교시나 주문 가운데는 다채로운 기교를 가진 작품도 없지는 않아 보입니다. '영주' 같은 주문이 그런 본보기입니다. '천지영기아심정'으로 시작하는 이 주문을 암송하다 보면 마치 맴을 도는 것처럼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연결 장치에 빠져듭니다. 그것은 의미의 심오함보다 더 많이는 절묘한 운율 효과 때문으로 보입니다. 주문은 의미에 분별심을 내지 말고 반복 주송하여 무심의 경지에 듦이 바람직하다고 할 때, 이 작품은 문학성이나 종교성은 물론 송주에 필요한 다차원의 매력을 갖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정산문학의 백미는 252구의 장편가사 '원각가'입니다. '망망한 넓은 천지/길고긴 저 세월에//과거 미래 촌탁하니/변·불변이 이치로다'를 주제문으로 삼은 이 가사는 깨달은 자의 깊은 통찰이 빚어낸 도덕가사의 정수라고 이를 만합니다. 시문학적 장치나 정서는 부족하지만 교훈시가로서 아포리즘이 풍성하여 문학적 가치와 특색이 돋보입니다.

다음은 소태사대종사비문이 눈길을 끕니다. 비문은 산문인 서(序)와 운문인 명(銘)으로 구성됩니다. 서는 의고체의 장중함도 좋지만, 무려 319개 음절을 단 한 문장으로 처리한 긴 호흡이 끝내줍니다. 대조적 사항을 담은 구절을 둘씩 묶되 무려 10차례나 열거하여 한 센텐스를 만들었죠. 놀라운 것은 그게 하나하나 또렷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복되거나 유사한 것이 아니라서 어느 하나도 생략해버릴 것이 없습니다. 참으로 대단하여 절로 '우와!' 소리가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소태산에 이어 전법게송을 한글 4행시로 한 것은 "정산종사 브라보!"입니다. 이처럼 심중한 의미를 이처럼 쉽게 쓴 게송도 다시 찾기 힘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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