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쉽게 사고 버리는 삶의

방식에 대한 성찰 없이는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어떤 머리도 쫙쫙 펴는 신통한 파마약이나 절대 들러붙지 않는 코팅 프라이팬, 하루 종일 앉았다 일어나도 괜찮은 링클프리코팅 바지. 생활의 소소한 불편함을 한방에 해결해 주는 편리한 물건들이 있어 좋은 세상이다.

덕분에 멀쩡한 물건들이 재활용 쓰레기로 퇴출되거나 재활용 가게로 보내질 때 아까운 마음은 잠깐일 뿐, 어느새 우리 맘은 또 다른 기능을 업그레이드한 신상품에 미혹당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더 깨끗하고 더 혁신적이고 더 편리한 생활용품들이 넘쳐나는 멋진 신세계는 어떻게 가능해졌을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새로운 합성물질 개발 등 화학분야의 성과를 첫 번째 이유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이렇게 새롭게 세상에 나온 화학물질은 무려 8만8천종에 이른다. 그 종류는 1945년부터 82년까지 350배 증가한 것이다. 매 9초마다 하나씩 새로운 물질들이 탄생한다. 우리는 이 물질들이 엄격한 기준과 심사를 거쳐 상용화 될 것이라 상상하지만 이는 순진한 기대일 뿐이다. 인간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것은 즉각적으로 확인되기 어렵고 미량 장기간 노출에 따른 영향이나 다른 화학물질과의 복합작용 일명 칵테일 효과를 분석해 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물질들은 사람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용화 되고 있다. 그 많은 물질 중 단 1.5~3% 정도만이 발암가능성 등에 대한 평가를 거칠 뿐이고 내분비계 영향 등에 대해 사전 평가를 받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보고되고 있다. 신혼부부 6쌍 중 1쌍이 불임의 고통에 시달리고 성조숙증, 생식계통의 암과 각종 질환이 급증하면서 이른바 환경호르몬이라고 불리는 내분비 교란물질에 대한 시민들의 염려와 불안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DDT와 침묵의 봄

우리에게 친숙한 DDT라는 살충제가 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모기, 빈대, 벼룩 같은 해충에 대한 강력한 구제효과를 입증하여 노벨화학, 의학상의 주인공이 됐던 물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6·25전쟁을 거치며 어렵고 힘들던 시절에 광범하게 사용됐는데 머릿니 박멸을 위해 어린아이들이 줄지어 미군들이 뿌려주는 백색 DDT가루를 뒤집어쓰는 모습을 기록영상을 통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던 DDT가 60년대 논란의 한복판에 서게 되고, 72년 북미에서 사용이 완전히 금지된다.

여기에는 레이첼 카슨이라는 한 여성의 힘이 컸다. 그녀는 DDT가 세상의 기아를 종식시킬 기적의 신기술로 치부되던 시기에 전혀 다른 맥락의 글을 썼다. 그녀를 비롯한 다른 화학자들이 뜻밖의 결과를 지켜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본 것은 수백 마리의 물고기, 벌레와 새들의 떼죽음이었다. 알껍질이 너무 얇아진 새들이 더 이상 번식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레이첼 카슨은 생태계의 이런 변화가 당시 광범하게 사용되고 있던 DDT, PCBs 등의 화학물질과 무관하지 않다는 용기 있는 주장을 했고 그녀의 이런 주장을 담은 저서 <침묵의 봄>은 검증되지 않는 화학물질이 만들어가는 세상의 불편한 진실을 알리는 최초의 책이 되었다. 그녀가 1962년 이 책을 발간했을 당시 그녀는 유방암으로 고통 받고 있었으며 1964년 이로 인해 사망하였다.

레이첼 카슨과 뜻을 함께 한 사람들의 노력으로 DDT사용은 1972년 북미에서 전면 금지되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레이첼 카슨의 문제의식을 자신들의 과제로 삼고 설립된 환경NGO '침묵의 봄 연구소'의 조사결과다. 이들은 미국 내 캐이프커드라는 지역이 높은 유방암 발생률의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해당지역의 일반주택에서 집 먼지를 모아 분석했다.

그 결과 이미 30년 전에 사용이 금지된 DDT를 비롯한 수십 종의 발암물질, 내분비교란물질들이 평범한 미국인들의 가정의 가구와 창틀, 집안 구석구석에서 검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연상태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이런 합성화학물질의 존재가 미국여성 8명중의 1명이 유방암에 걸리는 지금 미국의 상황과 어떤 연관관계를 맺는지 명확한 답은 아직까지 없다. 하지만 유방암 증가율 세계 1위국가 한국, 국민의 1/3의 사망원인이 암인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져주는 고민은 결코 가볍지 않다.

다이옥신과 환경문제

가장 억울한 사람들을 들라면 고엽제 피해자들을 들 수 있다. 60년대 베트남전에서 5만 톤 이상 사용되어진 에이전트오렌지 등의 고엽제에 주요성분인 다이옥신이 문제였다. 다이옥신은 그 독성이 청산가리의 만 배, 비소의 3000배이 이르고 암과 기형을 유발하는 잔류성 유기화합물이다. 이를 모르지 않는 미국은 전쟁에서의 편익을 위해 엄청난 양의 고엽제를 베트남의 전장에 퍼 붓는다. 그리고 결과 미군만이 아니라 국익을 위해 남의 전쟁에 나서야 했던 32만 명의 한국 참전병사들 중 많은 이들에게 고엽제후유증과 후유의증을 남겼다.

물론 베트남 사람들이 감수해야 했던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고엽제가 우리나라의 비무장지대에 대량으로 살포되고 후방기지의 토양에 매립되었다는 미군관계자들의 증언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다이옥신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우리 국민들의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다이옥신은 스톡홀름협약으로 전 세계적으로 사용이 중지된 잔류성 유기화합물질 중에서도 가장 독성이 강한 물질이라 우리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함과 억울함은 마땅한 것이다. 이는 미국 측의 책임 있는 조사와 정보공개가 속히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환경문제에서 우리가 피해자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역시 우리가 누리는 풍요와 편리에 대한 비용을 다 지불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전가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고민이다. 때로는 그 비용이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일 때가 있는데 문제는 이 사실을 깨닫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어떤 행동의 영향이 수 년, 수십 년, 때론 우리의 미래세대에서 나타날 수도 있고 지구 반대편에 사는 엉뚱한 이웃에게 피해를 안기는 일도 있다.

뿐만 아니다. 나의 생활의 편리를 도모하는 물건들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사용되어지는 화학물질은 그 생산 공정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의 건강을 크게 위협한다. 최근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백혈병 피해가 법원에 의해 공식 인정된 것이 그 한 예가 될 것이다. 또한 몇 년 전에는 태국 여성노동자들이 전자업체의 세척공정에서 솔벤트 등의 유기용제에 의해 신체마비 증상을 얻었던 사례도 있었다. 안전시스템이 미흡하고 건강피해 우려가 큰 공정일수록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는 비율이 높고 이런 공장들이 아예 저개발국가에 자리 잡으면서 화학물질에 의한 건강피해는 더 가난한 나라로 퍼져가고 있다.

유럽의 리치제도를 시작으로 화학물질에 대한 전 세계적인 규제와 관리가 엄격해지고 있다.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편리와 풍요를 우선으로 너무 쉽게 사고 버리는 우리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성찰 없이는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없다. 더 미룰 수 없다.

바로 지금이 나와 우리의 미래세대, 그리고 함께 살아갈 지구별을 위해 삶을 보다 소박하게 디자인해야 할 때이다.

▲ 이보은
여성환경연대대안생활위원장
전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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