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태어나면 부귀하든가, 빈천하든가, 아니면 중산층으로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이것은 우리가 빈천한 삶을 살 수도 있다는 것으로, 우선 빈천의 의미를 알아본다. 빈(貧)과 천(賤)의 두 용어가 합성한 것으로 경제적으로 가난한 경우를 빈, 신분상 천한 경우를 천이라 한다.

우리는 누구나 빈천을 면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것은 부귀의 삶이 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귀한 대접을 받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존경쟁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쳐 빈천을 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빈천이 좋지 않고 부귀가 무조건 좋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다. 빈천이 청빈한 삶으로 상징되고, 부귀는 부패의 삶으로 전락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유가의 선비정신에서 청빈이 강조되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공자는 벼슬도 못한 신분이었고, 가난할 때는 겨우 끼니를 때웠지만 안분으로 승화시켰던 것이다.

불교의 공(空)사상에 의하면 인생이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므로 빈부가 본래 없다고 한다. 태어날 때 부터 부자로 태어났거나 가난하게 태어나지 않았으며, 죽음에 이르면 부귀영화는 덧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제행무상의 도리가 이와 관련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다가오는 빈천은 극복의 대상인 바, 이 빈천은 어디로부터 오는가를 알아야 한다. 지나치게 의뢰생활을 하거나, 사치생활로 자행자지하는 생활을 할 경우 빈천해진다.

소태산은 말하기를 "사람이 누구나 이로운 일을 원하나 하는 바는 해로울 일을 많이 하며, 부귀하기를 원하나 빈천할 일을 많이 한다"(〈대종경〉, 인도품 39장)고 하였다.

현실은 빈천한 사람들이 많다는 데서 빈부 차가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기도 한다. 소태산은 〈대종경〉에서 "빈천보에 대하여 말하기를, 아무리 흔한 것이라도 아껴 쓸 줄 모르는 사람은 빈천보를 받는다"(실시품 18장)며, "물을 함부로 쓰는 사람은 후생에 물 귀한 곳에 태어나는 과보를 겪는다"고 했다.

돌이켜 보면, 초기교단의 살림 역시 가난하였다. 본 문목이 원기12년도에 발표된 이래, 원기17년 경에 빈천과 관련한 언급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원기17년 〈원각가〉에 '빈궁하고 천한 동무 회만(悔慢)하여 말을 마라. 빈천 중에 작심하면 부귀 올 날 또 있으며'라는 가사가 보이며, '빈천에 빠진 자는 자포자기 할뿐이오'(월보 42호)라며 희망을 심어주는 이공주 선진의 글이 이것이다.

이에 빈천보가 오는 원인을 파악하여 이를 극복하는 일이 필요하다. 대종사는 대대로 물림을 받아온 고향의 빈천을 면하고자 방언공사를 거행하였으며, 영육쌍전을 통해 빈천을 벗어나고자 하였다. 사치한 생활을 극복함은 물론 자력을 키워나가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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