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는 신화의 생산, 유통, 소비의 주요 공간
순천향대학교 송현주 교수

우리 사회에서 '신화'만큼 상품성 있는 담론도 드물다. 과거의 신화를 담은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인문학 시장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순천향대 송현주 교수의 '현대에 신화는 죽었는가?'는 신화가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는 중요한 속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송 교수는 "이런 신화들이 다양한 방면에서 문화상품화하려는 노력들이 기획되면서 담론의 확장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신화가 우리 사회의 인문적 지식의 확대 측면보다는 현대와 신화의 연관 면에서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과연 오늘날 신화 담론과 상품이 단순히 과거의 신화적 지식에 대한 갈구만을 의미하는 것일까? 송 교수는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은 과연 현대와 신화가 공존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며 "신화 담론의 구조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통적 의미의 신화 개념에 충실하면 이런 회의는 당연하다. 이는 우리가 현대라는 시간적 범위 안에 생성된 신화를 현대라는 맥락에서의 신화, 즉 현대 신화라고 말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

카렌 암스트롱은 〈신화의 역사〉에서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일어난 인류역사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가 바로 '신화의 죽음'이었다'고 강조했다. 현대 로고스 중심의 서구사회의 등장이 신화적 상상력의 종말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과거 우주와 밀접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인간이 이제는 우주 안의 고립된 작은 존재에 불과하게 됐다"고 언급하며 "신화를 상실한 현대인은 신성에 대한 감각이 사라지고, 표현 불가능한 것을 직시하는 능력도 잃었다"고 주장했다.

〈신화의 역사〉에서는 '신화의 상실로 20세기는 집단자살의 현상을 낳았다'고 기술했다. 세계1차 대전과 아우슈비츠의 대량살육은 신화의 종말, 실패한 신화로 보았다. 송 교수는 "현대의 실패한 신화에는 고전신화에 있던 연민의 정신이나 모든 생명의 신성함에 대한 경외, 중용정신 등이 들어있지 않다"며 "파괴적인 인종차별과 민족주의, 파벌주의, 이기주의를 조장하는 편협한 신화일 뿐이었다"고 말했다.

롤랑 바르트 역시 '현대'에서 전통적 의미의 '신화'의 종말을 이론화 했다. 신화와 현대 문화 현상을 결합시킨 롤랑 바르트는 〈신화학(Mythologies)〉에서 대중문화 속에 숨겨진 지배계급의 가치와 이익을 유지하고 증진시키는데 기여하는 사고와 실천의 세계를 '신화'라고 불렀다.

"신화는 '역사적인 것을 마치 자연적인 것처럼 바꾸어 놓는다'"고 주장한 송 교수는 프랑스 국기에 경례하는 흑인병사의 사진을 예로 들며 "식민지 출신도 평등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사실화'해 현실의 차별을 은폐하는 신화를 그렸다"는 설명이다.

송 교수는 "신화가 조작과정을 통해 이처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수용하도록 효력을 발휘했다"며 "이렇게 만들어진 의미가 '사회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믿음이나 가치'가 됨과 동시에 이렇게 통용되는 속설이 바로 신화"라고 덧붙였다.

'현대신화=이데올로기'라고 본 바르트 역시 '현대'를 고대의 신성하고 자연스런 신화의 상실 시대로 표현한 암스트롱과 그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중문화는
신화의 생산, 유통, 소비의
주요한 공간으로 제공되면서
우리 삶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면에서 송 교수는 오늘날 대중문화(비록 이데올로기라 할지라도)는 신화의 생산, 유통, 소비의 주요한 공간으로 제공되면서 우리 삶도 그 공간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송 교수는 "피시위크에 의하면 대중문화는 대중의 '신'과 '이야기'를 영웅과 아이콘을 통해 그려내는 신화적 구조를 갖고 있다"고 말한 뒤 "보드리야르는 '현대 사회의 풍요로움의 표상'이라 할 수 있는 '광고가 진위(眞僞)를 초월한 신화'라고 규정했다"고 밝혔다.

송 교수는 "존재의 근원과 운명 등과 같은 인간의 공통 관심사를 드러내고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신화의 기능이라 한다면 오늘날 대중문화가 바로 그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대중문화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꿈을 담은 이야기'라는 점에서 대중문화가 사회의 기초를 형성하는 '신화'라 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송 교수는 "이런'현대'와 '신화'의 모순 논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신화를 포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그 이유로 "인간의 공동체적 이상향, 궁극적으로 귀환하려는 자연과 신성함의 존재 등이 '신화'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송 교수는 칼 융의 말을 인용했다. "신화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의식 너머의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접근해 오는 자기 원형의 모습과 소리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근대 한국불교의 종교정체성 인식〉, 〈현대 한국불교에 불의 성격에 관한 연구〉 등의 논문이 있고, 저서로 〈봉암사결사와 현대 한국불교〉, 〈근대 한국 종교문화의 재구성〉(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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