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성 교무의 '소태산대종사 생애 60가지 이야기'

▲ 원불교역사박물관전시실에 백지혈인 당시의 모습을 그린 모형.
영산 방언공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은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던 때로 영광에서도 만세운동이 대대적으로 있었다. 소태산대종사는 만세운동을 보며 단원들에게 "개벽을 재촉하는 상두소리다"며 "어서 방언공사 마치고 기도 올리자"고 했다.

4월26일(음력 3월26일) 방언공사를 준공하며 방조제 준공기념비를 만들고 소태산대종사는 9인 단원들에게 말했다.

"모든 사람의 정신이 물욕에 끌리지 아니하고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 주기를 기도하여 천의의 감동하심이 있게 하라. 그대들 각자의 마음에 능히 천지를 감동할 만한 요소가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각자의 몸에 또한 창생을 구원할 책임이 있음을 항상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단원들이 소태산대종사의 뜻에 따르겠다고 다짐하자 기도 일자와 방위를 지정하여 그날(4월26일)부터 시작하여 8월11일(음력 7월16일)까지 10일에 한 번씩 매월 음력 6일, 16일, 26일마다 12회 기도를 올렸다.

기도 장소는 교화단 조직 시에 정한 각각 단원의 방위를 따라 정하되 노루봉(중앙봉)을 중앙으로 잡고 8방을 맞추어 주위의 산봉우리 혹은 산 중턱을 정했다. 기도 방식은 마음 청결을 위주로 하고 계문을 조심하며 육신도 목욕재계하고 기도 당일 오후8시 이내로 도실에 모였다. 소태산대종사의 말씀과 지시를 받고 각자의 기도 장소로 오후9시에 출발하여 10~12시까지 기도한 후 돌아오게 했다.

기도 장소에는 단기인 팔괘기를 주위에 세우고, 식을 시작할 때에는 먼저 향과 초, 청수를 진설하고, 헌배와 심고를 올린 후 축문을 독송하고 주문을 외웠다.

단원들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기도 날에는 어김없이 제 시간에 맞추어 각자의 지정된 기도봉에 올라 정성을 다해 기도를 올렸다.

법인기도를 시작하여 12회(8월11일)를 마치고 돌아오자 소태산대종사는 단원들에게 물었다.

"그대들이 지금까지 기도해 온 정성은 심히 장한 바 있으나 아직 천의를 움직이는 데는 초원하나니, 이는 그대들의 마음 가운데 어떠한 사념이 남아 있는 연고이다. 그대들이 사실로 인류 세계를 위한다고 할진대 그대들의 몸이 죽어 없어지더라도 우리의 정법이 세상에 드러나서 모든 창생이 도덕의 구원을 받는다면 조금도 여한 없이 그 일을 실행하겠는가?"

단원들이 모두 비장한 태도를 보이며 일제히 희생하기로 고백했다. 이에 10일간 치제를 더하고 오는 기도일 즉 8월21일(음력 7월26)을 최후의 희생일로 정했다.

최후 날인 8월21일 저녁8시가 되자 도실에 단원들과 소태산대종사가 좌정했다. 청수 한 동이를 도실 중앙에 놓게 하고 시계와 준비한 단도를 각자 앞에 내놓으라 했다.
소태산대종사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사무여한(死無餘恨)의 결의가 되었느냐?"고 돌아가면서 다짐을 받았다.

이윽고 중앙단원 송규가 '사무여한'이라 쓴 백지 한 장을 들고 한 사람씩 백인(白印, 손도장)을 받기 시작했다.

아홉 사람이 찍은 사무여한의 최후증서를 소태산대종사께 올리자 소태산대종사는 결사(決死)의 의미로써 일제히 복지심고(伏地心告)를 올리도록 했다. 복지심고가 끝나자 소태산대종사가 그 최후증서를 살펴보시더니 지장을 찍은 자리가 혈인(血印)으로 변한지라 단원들에게 말했다.

"참 잘됐다. 혈인이 나왔다."
소태산대종사는 기뻐하는 얼굴로 일동을 칭찬하며 말했다.

"이것은 그대들의 일심에서 나타난 증거이다."
소태산대종사가 한참을 보고나서 그 증서를 태워 하늘에 고(告)하고 말했다.

"음부공사(陰府公事)는 이에 판결이 났다. 우리의 일은 이제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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