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삶의 목표 중에서 부귀영화를 가장 크고 끊임없이 추구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세속의 잣대로 바라보면 사람의 입신출세는 부귀영화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설사 부귀를 이루었다고 해도 심신작용의 굴곡이 심하여 자녀 3대가 잇지 못한다는 말도 있으니, 본 문목은 부귀를 끝까지 지키지 못하는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법어이다.

불경 〈열반경〉에 이르기를 "전생 일을 알고자 할진대 금생에 받은 바가 그것이요, 내생 일을 알고자 할진대 금생에 지은 바가 그것이라"고 하였다. 소태산대종사는 이에 말하기를 "이 생에서 그 마음은 악하나 부귀를 누리는 사람은 전생에 초년에는 선행을 하여 복을 지었으나 말년에는 선을 지을 것이 없다고 타락하여 악한 일념으로 명을 마친 사람"(〈대종경〉, 천도품 35장)이라 하였다. 이처럼 초년과 말년, 전생과 내생은 모두 인과 작용에 의해 전개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인생 초반기에 부귀를 누린다고 해도 그것이 후반기에도 부귀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어리석게도 영원한 부귀를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태산은 원기17년 〈월보〉 43호에서 말하기를, 지혜를 준비할 줄을 모르면 버는 돈도 지극히 약소하여 항상 빈천의 구렁을 면치 못할 것이며, 돈을 벌기는 커녕 오히려 멸망을 당하고 마는 수가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 우리가 초년에 부귀한 것을 말년까지 지속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이 이룬 부귀를 온전하게 보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으면 가난을 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리 흔한 것이라도 아껴 쓸 줄 모르는 사람은 빈천보를 받으며, 까닭 없이 물을 함부로 쓰는 사람은 후생에 물 귀한 곳에 몸을 받는다(〈대종경〉, 실시품 18장)라고 하였다. 절약정신으로 살고, 공중을 위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부귀는 지속된다는 뜻이다.

정산종사는 원기17년에 '원각가'에서 말한 바 있다. "흥망성쇠 반복되니 부귀빈천 무상이요, 강자약자 전환되니 계급차별 달라진다."(월보 38호) 부귀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무상한 것이요, 또한 강약의 원리에 의한 자리이타의 정신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물질의 부귀는 영원한 것이 못되며, 마음의 부귀를 이루는 적공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물질의 부귀에 급급하지 말고 심신의 적공을 통해 강급이 아닌, 진급의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밖으로 기술에 치중하는 것보다 안으로 마음 쓰는 법을 알아야 하는 바, 우리의 교법이 곧 돈을 버는 방식이라(〈대종경〉, 수행품 8장)는 가르침을 새겨야 한다. 초년과 말년 아니 영생을 부귀하게 사는 방식이 이것으로, 자본을 활용하여 사업을 하는 사람의 경우 더욱 새겨야 할 법어가 이것이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