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스스로의 마음(自心)만 알면 갠지스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법문과 오묘한 진리를 구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얻게 될 것이다."

'스스로의 마음'만 알면 진리는 구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얻게 된다고 보조스님은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스스로의 마음(自心)'이란 부처님과 같은 완전함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누구나 이미 부처가 되어 있다(本來成佛)'는 말이 된다. 즉 부처는 점차적인 수행을 통하여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완성되어 있는 '그 무엇'을 발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정말 있는 그대로 부처라고? 저 탐욕스럽고, 툭하면 화내고 짜증내며, 어리석은 저 친구도 부처라고? 믿기지 않는 이야기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보조스님은 '그렇다! 모두가 이미 부처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그에 대한 근거로 다음의 두 가지 부처님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첫째는 "일체의 중생들을 두루 살펴보니 모두 여래의 지혜와 덕상(智慧德相)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화엄경〉의 '여래출현품'에 나오는 말씀이다. '만약 모두가 여래의 지혜 덕상을 갖추고 있다면 모두 다 그러한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데 왜 그렇지 못한 것일까?'하는 의문이 당연이 생기게 된다. 그에 대한 대답이 두 번째에 나온다.

둘째는 "일체 중생의 가지가지 환화(幻化,허망된 생각)가 모두 여래의 원각묘심(圓覺妙心)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는 〈원각경〉의 '보현보살장'에 나오는 말씀이다. 환화(幻化)란 허깨비와 같고, 꿈과 같고, 허공 꽃과 같은 것이다. 눈을 비비면 허공 꽃이 허공에 생기지만 그것은 진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와 같이 중생들이 마음속에 만들어 놓은 가지가지 세계는 모두 저 허공 꽃과 같은 것이다. 〈원각경〉에서는 이 말에 이어 "중생의 환화는 환(幻,허깨비)에 의해 사라지나 모든 환(幻)이 다 사라졌다 하더라도 본각(本覺,부처의 본래 깨달음)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즉 중생이 만들어 놓은 세계는 다 꿈이요, 허깨비이지만 그것이 사라지면 모든 것이 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본래 부처인 마음은 원래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사랑도 돈도 명예도 목숨도 허망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것을 추구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마음도 사실은 허깨비요, 꿈이며, 허공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헛된 허깨비 놀음에서 당장 빠져나와야 한다. 마치 물통의 밑바닥이 떨어져 나가 물동이의 물이 쑥~하고 단번에 빠지는 것처럼 떨어져 나와야 하고, 인형극의 주인공조차 사실은 무대 뒤에서 조종되고 있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처럼 화들짝 놀라 빠져나와야 한다.

그때에야 "마음의 성품은 오염되지 않고 본래 스스로 원만한 것이니, 다만 망령된 생각만 여의면 곧 그대로의 부처이다"라는 보조스님의 말씀에 두 손을 치며 기뻐할 것이다.

여기까지가 서분에 해당되며, 다음부터는 정종분이 시작된다.

<충남대·천안교당>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