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힘들었던 시간을 보상이라도 하듯, 올 여름은 남편과 함께 두 번의 휴가를 다녀왔다.
익산총부, 영산, 변산 그리고 만덕산훈련원으로 생각지도 못한 성지순례길이었다.

이는 정말 우연한 기회였다. 남편은 굴삭기로 일을 하며 차 안에서 원음방송을 즐겨 들었다고 한다.

어느날 원불교100년기념성업사업으로 '수장고 속에 모셔진 대종사님 유품전'을 총부에서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이번 휴가는 성지순례를 하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는 '이 사람이 달라졌구나'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렇게 떠난 우리 부부의 첫 성지순례 길의 첫 여정으로 총부를 들어서며 부부가 함께 올 수 있게 해주신 사은님께 마음으로 감사를 올렸다.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원불교역사박물관이었다. 생전에 쓰시던 그릇, 거울, 촛대, 모자, 수첩, 고무신 등을 세세히 돌아보며 나는 대종사님을 좀 더 가까이서 뵙는 듯 만날 수 있었고, 박물관, 영모전, 대종사님 성탑. 정산종사님 성탑 에서 우리는 기도도 올리며 처음 총부를 찾은 남편에게 곳곳을 소개했다.

영산성지는 이름 그대로 대종사님 기운을 받는 듯 공기부터가 달랐다.

대종사님이 대각을 이룬 대각터 앞에서 기도를 올리며 '만고일월'의 깊은 뜻을 되새겨 보기도 하고 탄생가와 옥녀봉 정상에 그려진 일원상도 바라보며 사진으로만 보던 것과는 다른 감회를 느꼈다.

발길을 돌려 변산으로 가던 중 펼쳐진 정관평은 바다를 막아 농지를 일구신 선진님들의 노고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변산성지의 하늘은 장마철임에도 맑고 청명한 하늘을 보여줬다. 제법성지, 석두암과 일원대도 성탑을 돌아보고 오는 길엔 '올라가서 공부 잘 해라'란 대종사님 말씀이 들리는 듯 했다.

남편은 평소에 원음방송을 들으며 생각했던 사후 장기기증 신청을 하겠단다. 남편의 마음공부는 그 안에 다 묻어 있었다. 그렇게 긴 여운이 남은 성지순례 길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 후 남편은 함열로 직장을 이동하며 또 한 번의 휴가가 생겼다. 그리하여 기차를 타기 위해 영등포역에 갔는데 농타원님을 만나 뵐 수 있었다.

평상시 마음속으로 뵙고 싶었던 만덕산훈련원장님이신 이양신 교무님을 뵙게 되어 너무 감사했다. 그런데 또 우연히도 같은 기차, 같은 칸에 타게 됐다.
교무님은 말씀 중에 "지금 법위사정 훈련을 나고 있으니 남편과 함께 훈련을 참석해 보라"고 추천해 주셨다.

남편은 일 관계로 아직 한 번도 훈련을 나 보지 못했기에 이번이 좋은 기회인 것 같았다.
처음 훈련을 참석하는 남편은 다소 분위기가 생소한 모습이었지만 주옥같은 법문말씀과 다른 교당 교도님들과 회화와 강연시간을 통해 훈련의 묘미를 느껴가고 있었다.
남편은 "다음에 참석할 때는 더 잘 준비하여 오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나 역시 남편의 훈련을 받기위해 참석한 자리였지만 결국은 내 공부를 위한 훈련이었음을 알게 됐다. 두 번의 휴가와 훈련은 교당에서 배운 공부를 확인 할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며칠 후, 보건복지부 장기이식 관리센터에서 남편 앞으로 장기기증 등록증이 집으로 도착했다.
나는 "이제 자신의 몸은 세상을 위해 바친 것이니 건강관리 잘 하라"며 남편에게 미소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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