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희고 길구나, 하늘보다도
구름은 붉구나, 해보다도
서럽다, 높아 가는 긴 들 끝에
나는 떠돌며 울며 생각한다, 그대를


그늘 깊이 오르는 발 앞으로
끝없이 나아가는 길은 앞으로
키 높은 나무 아래로, 물 마을은
성긋한 가지가지 새로 떠오른다


그 누가 온다고 한 언약(言約)도 없건마는
기다려 볼 사람도 없건마는
나는 오히려 못 물가를 싸고 떠돈다
그 못물로는 놀이 잦을 때.

'가을 저녁에' - 김소월(金素月 1902~1934 시인)


김소월은 평북 정주 출신으로 여성의 입장에서 전통적인 한의 세계를 향토적이고 민요적으로 노래했다. 이 시는 나라 잃은 식민지 백성의 소외감과 그리움이 넘쳐난다.
소월은 음독자살했다고 전하는데, 자기감정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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