楓葉冷吳江   단풍잎은 오강에 싸늘도 한데
蕭蕭半山雨   우수수 반산엔 비가 내리누나
寒鴉栖不定    갈 까마귀 보금자리 찾지 못해
低回弄社塢    낮게 돌며 사당 언덕 서성이네
渺渺黃雲城    아스라이 누런 구름 자욱한 성
依依紅葉村    안타까이 붉은 잎이 물든 마을
相思憶遠人    먼 데 있는 그대가 그리울 사
聽爾添鎖魂    그 소리 듣자니 애가 타는구나.

'갈까마귀 보금자리를 찾지 못해(寒鴉栖復驚)'

- 김시습(金時習 1435∼1493조선 초 문인)


김시습의 호는 매월당(梅月堂), 법호는 설잠(雪岑),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문장이 탁월한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남겼다.
이 시의 제목은 불길하고, 분위기는 음울하다. 늦가을 단풍, 가을비, 사당은 모두 을씨년스러운 소재이며, 둥주리를 찾지 못하는 까마귀는 기구한 매월당의 운명을 암시하는 듯하다.

다섯 살 때 세종대왕의 총애를 받은 신동이 과거 준비를 하던 27세 때 왕위에서 물러난 단종의 소식을 듣고 삭발하고 중이 된 매월당, 단종 복위 사건으로 처형된 사육신(死六臣)을 암매장하고 은둔과 저술과 방랑, 거기에 37세에 환속과 결혼….

'절의를 표방하고 윤리와 기개를 잃지 않았다'고 이율곡이 칭송한 김시습은 성리학의 입장에 서서 유불선의 융합을 이상으로 삼았다. 불교의 미신은 배척하되 자비심으로 만물을 살리고, 비합리적인 도교의 신선술은 부정하되 기를 다스려 천명(天命)을 따르라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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