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20살에 친구를 따라 우연히 가게 된 원불교 교당에서의 첫 법회의 의식은 낯설고 사이비종교(?) 같은 분위기였다.
그때 나는 어린 나이 시작된 직장생활과 거친 남자직원들로 인한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던 시기였다.

마침 설교시간에 해주신 인과의 원리에 대한 교무님의 법문은 특히 가슴에 와 닿았다. 그래서 그 다음 주에 한 번 더 법회를 가게 되었는데, 그 인연이 나와 원불교의 끊을 수 없는 시작이 되었던 것 같다.

결혼 후 잠시 교당을 다니지 못했다. 진주로 이사를 온 후에는 신심이 큰 것도 아니면서도 교당을 가지 않는 나 자신이 숙제를 하지 않고 있는 학생 같았다.

뭔가 빚을 지고 있는 사람처럼 교당을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하고 있었던 건 지금 생각해 보아도 특별한 원불교와 나 사이의 인연인 것 같다.

청년회원이었던 내가 아이의 손을 잡고 찾아간 진주교당의 교도님들은 진주에 연고가 없는 나에게 항상 가족처럼 잘 대해주셨다.
또한 육아문제로 힘들어 할 때에도 성심성의껏 도움을 주셔서 많은 힘이 되었었다.

매주 법회 때마다 해주시는 교무님의 법문은 일주일 동안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시는 지침서였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교당이 재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교당을 왜 다니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교당일이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매주 법회 때마다 "마음공부 잘 합시다"라고 인사를 하며 마치는데 "나는 마음공부를 하고 있나?"라는 의문도 들었다.

교무님께서 기도 때 마다 읽으시는 기도문에 나오는 "기질변화 심성변화를 이루어지게 하소서"와 법문하시는 중 "원불교 다니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고 사주팔자도 바꿀 수 있다"라는 말씀에도 의문이 들었다.

교당만 다니는데 어떻게 기질이 바뀌고 심성이 바뀐단 말인가? 기질과 심성변화는 교당을 다니기 전이나 그때나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더 못나고 더 속이 좁아진 것처럼 느껴졌다

"10년이 넘는 세월을 거의 안 빠지고 교당을 다녔으면 교당을 다니지 않는 사람과는 뭔가 달라야하지 않는가?", "적어도 원불교 교도라면 비교도와는 차별화된 무언가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법문 훌륭한 강의는 인터넷이나 TV등에서 넘쳐난다. 그것을 들으면 되지 교당을 왜 다녀야 하는가?라는 생각도 들어지니 교당을 다니는 것이 나에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특히 날씨가 좋은 일요일은 정말 교당에 가기가 싫었다. 하지만 법회에 피아노 반주를 맡고 있어서 겨우 법회출석을 하고 있었고, 법회를 마치면 도망치듯이 집으로 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하지만, 아마도 피아노 반주자가 아니였다면 망설임 없이 결석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쯤 교당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교도가 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든다. 사실 그때는 어떻게 하면 교당에서 발을 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던 것 같다.


<진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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