紙被生寒佛燈暗 종이 이불에 한기 돌고 불등은 희미한데

沙彌一夜不鳴鐘 사미승은 밤새도록 종조차 울리지 않누나

應嗔宿客開門早 나그네가 일찍 문 연다 응당 투덜대겠지만

要看庵前雪壓松 암자 앞에 눈 쌓인 소나무 꼭 보아야 겠네.

'산중 눈 내리는 밤(山中雪夜)'- 이제현(李齊賢 1287-1367 고려 공민왕 때 명신, 학자)


이제현은 원나라 연경에서 문명(文名)을 날린 인물로 벼슬은 문하시중에 이르렀으며 공민왕의 명으로 실록을 편찬하였다. 저서로 〈역옹패설〉 등이 있는데, 그의 '선비 문학관'은 조선시대까지 널리 계승되었다.

원나라의 간섭으로 자주성을 상실하고, 불교도 교종(敎宗)은 물론 선종(禪宗)까지 정치권력과 결탁하고 세속화하여 부패한 시대에 이제현은 성리학을 도입하여 나라를 혁신시키려고 했다.

이 시는 가난하고 게으른 절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눈 쌓인 겨울 소나무를 보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이 간결하게 표현되었다. 암담한 시대에 지조 있는 선비를 찾고자 하는 간절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이제현의 사고방식은 그의 문학관에 잘 나타나 있다. 즉 문학을 지적인 도락(道樂), 혹은 재능을 뽐내려고 표현력에 치중하는 대신 마음을 가다듬고 현실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자는 것. 바로 조선 사대부의 문학관이 아니던가.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