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우진 교도·여주교당(논설위원)
원불교에 입교한지 어느 덧 20여 년이 지났다. 잦은 직장 이동으로 입교만 해놓고 교당과 인연을 가까이 하지 못하다가 여주에 교당이 생겨 법회에 나간 지는 10년째이다.
어린 시절부터 고교시절까지 신앙생활에 흠뻑 빠졌을 때 내 삶의 멘토는 예수님이었다. 지금도 예수님은 내 삶의 소중한 멘토로 자리하고 있다.

철이 들면서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생활에 적용할 때 종종 던졌던 화두가 '이 상황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였다. 대부분의 힌트는 예수님의 주옥같은 '산상수훈' 가르침에서 얻었다.

어린 시절에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은 특정 상황에서 예수님이 불같이 화냈던 모습, 거친 표현들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행위와 표현들이 '하나님의 의를 이 땅에 바로 세우기 위해 사회적 정의와 진실된 신앙을 강조하기 위한 하나의 가르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읽어봐도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위대한 보편적 진리임을 깨닫게 된다.
어찌 보면 운 좋게도 어린 시절 이 위대한 멘토를 만난 덕에 그나마 지금 정도의 삶을 누리고 있지 않을까 한다.

지금 필자의 사무실 책상 유리 밑에는 두 번째 멘토의 사진이 있다. 50대 무렵의 회색 한복 차림을 한 조선 할아버지이다. 바로 육대요령에 게재된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의 진영이다. 이 사진을 늘 앉는 책상 유리 밑에 아예 붙여 놓은 이유가 있다. '내 마음을 제대로 알아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사용하자'는 것이 원불교 교도의 중요한 수행이자 일상에서의 마음훈련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마음공부의 중요한 키워드로 사용되는 키워드가 '앗! 경계다'이다. 원불교의 가르침을 실생활에 접목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경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처음 원불교를 만났을 때, 이 마음을 알아차리기 위해 '처처불상, 사사불공'이라는 표어를 책상에 붙여 놓았다. 하지만 다양한 상황을 대하다 보면 표어의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상황이 끝난 다음에야 보였다.

명색이 대종사님 법을 만나 수행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한 사람으로서 나중에 보이는 글자는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4년 전부터 아예 대종사님의 사진을 붙여 놓고 학생들을 대하고 있다.

효과는 만점이다. 첫째 이유가 한국인 모두에게 친숙한 사진이라는 점이다. 사실 교당에 처음 들어갔을 때 벽에 걸려진 대종사님 진영은 낯설었다. 왠지 일본풍 같은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 사진은 회색 조선 옷을 입은 채 척박한 상황 속에서 사실적 신앙을 펼치고자 하는 시대적 고민과 대각자의 자비훈풍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래서 필자를 만나러 오는 학생들은 책상 옆에 있는 사진에 제법 관심을 갖고 묻는다.

'저 조선 할아버지 누구예요?'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 박중빈 선생님이시고, 선생님의 정신적 멘토시다!'. 짧은 대화 속에 자신들이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얼핏 배웠던 원불교를 떠 올린다. 소극적인 필자로서는 예상치 못한 교화의 순간이다.

둘째 이유는 일상 생활 속에서의 수행을 관찰하는 기준점이 생생하게 옆에 살아 있다는 점이다. 대종사님의 진영을 가운데 두고 만나는 학생들은 지난 날, 경계를 놓치고 대하는 학생들과 다르다.
일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최근 어떤 힘든 일이 있었다. 어느 정도 무사히 마치고 나서 주변 동료들이 그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지 물었을 때, 사진을 가리키며 '여기서 나온다'고 말했었다.

50대 무렵 회색 조선 두루마기를 입은 소태산대종사님의 사진은 수시로 나를 일깨우는 중요한 매체가 되고 있다. 개교 100주년을 앞두고 대종사님 진영에 관한 의견수렴이 있다고 한다.

간디선생님 하면 흰색 천 하나로 온 몸을 감싼 인도 특유의 복장이 떠오르고, 공자님 하면 중국 전통 복색의 인물이 삽화에 나온다. 세계적인 정신개벽의 선구자로서 소태산 박중빈 선생님의 표준 진영은 어떠해야 할까?

조선에서 태어나신 이상 조선 복색을 기본 이미지로 할 때 원불교의 고유성과 세계 종교 간의 다양성이 활짝 꽃피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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