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상의 교무·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논설위원)
〈조선불교혁신론〉은 원기20년에 완성된 것으로 그 내용은 소태산대종사의 새로운 교단을 창설하는 근본이념과 방향을 분명하게 그려놓은 것이다. 익히 들어온 원불교의 방향으로 불법(佛法)의 시대화 대중화 생활화의 표방의 근거는 바로 〈조선불교혁신론〉인 것이다.

필자가 미주선학대학원에서 근무하면서 미국인과 미국의 문화를 접하면서 앞으로 원불교가 미국에서 혹은 서구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한 가능성을 보는 것은 혁신론에서 나타나는 소태산대종사의 원불교 방향에 대한 분명한 구상에서이다.

원불교가 실현해야 할 과거불교의 선점으로 출가자도 생계를 시주와 동녕에 의존하지 않도록 적절히 생계를 위한 직업을 갖게하고, 결혼도 자신의 선택에 따라 하게 하였다. 그런 구상에서 보면 재가출가의 구별이 지금 처럼 분명한 것이 아니라 출가자도 생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업을 갖게 하고 재가자도 나이들어 여유가 있으면 해탈공부에 주력하면서 교화사업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특별한 서원으로 독신수행을 하면서 온전히 교화 교육 등 제도 사업에만 전념하는 길도 인정하여 정남 정녀의 길을 열어 놓았다. 재가를 하든 출가를 하든 그리고 결혼을 하든 독신을 하든 개인의 선택이고 자신의 여건에 따라 하는 것이고 그 목적은 공부와 사업을 하는데 개별적인 상황이나 의지를 존중한 길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현재 우리 교단의 교무 및 전무출신의 규정은 교단내의 기관에서 근무하는 외 다른 직업을 갖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전무출신으로 교단 내의 기관에 근무하면서 결혼한 교무의 경우 적절한 경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무지가 많지 않다. 한 사람의 생필품 정도나 개인에게 필요한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교무용금 수준으로 결혼생활에서 요구되는 의무를 수행하기는 역부족이며 더욱이 그나마 기본용금도 해결 못하는 교당들이나 기관들이 많다.

현재 교단의 제도와 규정 속에서 전무출신들은 현실생활과 전무출신으로서 요구되는 이상적 삶의 형태와 괴리 속에서 갈등을 겪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러기 때문에 그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정무제도(남자교무의 부인에게 일정 급여를 주어 남편의 교화활동을 돕게하는 제도)를 만들고, 또한 결혼한 남자교무의 현실을 잘 아는 원로님이 수 채의 아파트를 지어 돕고자 하는 등 많은 구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이 아닐 뿐 아니라 앞으로 계속적으로 나오는 결혼한 남자교무들의 문제를 다 해결해 줄 수도 없으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출가자의 복지를 만들면 그 비용부담을 어떻게 누가 담당해야 하는가?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출가위주의 교단이 되고 마는 것이다. 또한 결혼한 남자교무의 현실 문제를 인지하면서 교단은 여자교무 지원자에게는 정녀지원을 의무화하면서 원래 교법정신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교단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미주선학대학원이 만들어지면서 앞으로 원불교교화도 현지인을 교무로 양성시켜 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았다. 따라서 원불교학과 책임을 맡으면서 현지인 발굴에 심혈을 기울이며 지원자를 받아 면접을 하고 생활을 지켜보면서 혁신론에서 밝힌 그 내용대로 즉 교법정신대로 교단의 제도나 정책이 되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한국과 다른 미국에서 특히 민주주의와 과학적 이성적 사고를 중시하는 미국문화에서 보니 더욱 그렇다. 또한 미국의 사회경제 상황을 고려하고 미국인의 문화와 생활 방식을 보면 한국 교무님들 처럼 무급으로 교무 노릇하기도 힘들며 그런다고 미국인들의 최소한의 현실에 맞추어서 용금제도를 실시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더욱이 여자교무를 지원하는 사람에게 정녀지원을 의무로 해 놓은 것은 미국사회문화에서는 용납 될 수 없는 일이다. 재가출가의 구별이 직업으로 분명히 구별되기보다 프리랜서 교무(즉 다른 직업을 가지면서 형편에 맞게 교무노릇을 함)도 나오고 재가자도 교무 못지않게 교리를 연마하여 경제적 여유나 시간적 여유가 되면 교화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결혼한 교무의 경제문제를 함께 안고 가려고 한다면 교단이 새로운 딜레마에 봉착할 수밖에 없고, 더 좋은 인재를 받아들일 수 없도록 출가의 문호를 좁히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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