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미래, 관용과 다원주의가 정착될 전망

▲ 각 종교 상징.
종교는 변하지 않는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지만 종교 형태는 끊임없이 변해왔다. 그러므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미래세계의 종교가 어떤 모습으로 변할 것인가에 대해서그 누구도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하고 있고, 종교도 지금의 형태 그대로만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종교도 하나의 문화현상이기 때문이다. 또 모든 문화가 그렇듯이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인간에 의해서 끊임없이 정의되고 있다.

본사에서는 '종교의 미래'라는 주제로 '미래 시대의 종교'에 대한 담론을 통해 돌아오는 시대를 준비하고자 한다.


매년 되풀이 해 찾아오는 것이 새해이지만 그래도 정초에는 평소에 비해 기분이 보다 경건해지는 느낌이 있다. 지난해를 되돌아보며 새로운 한 해를 구상하는 시점이라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에도 적어도 이 맘 때에는 자신의 삶을 신앙과 연관하여 한번쯤 생각해 보곤 한다. 그게 아마 인지상정(人之常情)일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하라고 인간 세상에 역법(曆法)이라는 게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종교의 미래 불안 해 보일 수도

합리성과 효율성이 강조되는 것이 현대사회의 전반적인 특징이고, 게다가 정보화 혁명 덕분에 사람들이 과거에 비해 훨씬 더 똑똑해 진 오늘의 현실에서 종교의 미래는 사뭇 불안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종교의 입지는 몰락 중이거나 아니면 점점 더 약화되고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 글의 주장이다.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할 때마다 괜스레 마음가짐을 한번 추슬러 보는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다른 동물과는 달리 우리들 인간은 종교적 본능이랄까 하는 것을 갖고 있다. 따라서 종류와 방식은 가변적이겠지만 인간 본연의 종교성 자체는 미래에도 불변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의 종교생활은 미래사회에서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우선 기독교, 이슬람, 힌두교, 불교 등 이른바 세계 4대 종교의 비중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개인적 차원의 신념이나 실천의 측면에서 이들 종교의 위상이 이전만 못할 수는 있겠다. 또한 서구에서 이슬람 인구가 급증하고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기독교 인구가 늘어나는 등 종교 인구의 대륙별 판세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세계화 추세가 이들 기성 거대종교에 대해 별다른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위기를 맞이하는 것은 세계 변방이나 오지(奧地)의 토착신앙이나 토속종교가 될 것이다.

4대 종교 독과점 지속

외형상 세계 4대 종교의 독과점이 지속하는 가운데 미래에는 종교적 관용과 다원주의가 정착될 전망이다. 종교 간에 갈등이나 전쟁 대신 화합과 공생의 분위기가 확산될 것이다. 왜냐하면 전반적으로 개인의 종교적 충성도가 점차 약화될 뿐 아니라 특정 종교와 특정 문명과의 전통적 일치 현상도 쇠퇴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이슬람교가 확산되고 미국에서 불교가 융성하며 중국에서 기독교가 번창하는 등 세계화와 더불어 모든 종교가 각자 나름의 세계적 종교로 발전할 것이다.

다양한 종교들 사이의 평화공존은 이른바 '친절한 불가지론(不可知論)'(Friendly Agnosticism)의 확산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누구의 종교가 옳은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이 전형적인 불가지론이라면, 친절한 불가지론이란 그렇기 때문에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이해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모든 종교는 상대적이고 서로 동등하다는 입장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도 점차 뿌리를 내리고 있다. 가령 성탄절에 사찰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부처님 오신 날을 기독교계 성직자들이 봉축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신기하지 않다.

'모든 종교는 신에게 이르는 다양한 길일 뿐이다'라고 하는 친절한 불가지론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종교와 비종교 사이의 차별도 희석시키고 있다. 이른바 '브라이츠 운동'(Brights movement)은 종교를 믿지 않는 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히 드러내는 일종의 커밍아웃 운동으로서, 전문직 종사자를 중심으로 최근 구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말하자면 기독교 신앙이 규범이자 대세인 서구 문화권에서 자연주의적 세계관으로 무장한 비신자들이 어두운 벽장 바깥으로 뛰쳐나오는 운동인데, 싫든 좋든 이와 같은 공개적인 무신론은 하나의 문화 트랜드로 자리잡고 있다.
유럽 - 이슬람교 확산

미국 - 불교 융성

중국 - 기독교 번창

다원주의, 영성주의 발전

종교 소비자 주권 강화

원불교엔 새로운 도전이자

무한한 기회


영성주의 확장될 전망

하지만 이와 같은 불가지론이나 브라이츠 운동이 반드시 비종교나 반종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미래에는 종교와 비종교 혹은 반종교 사이에서 영성주의(spirituality)라는 제3의 길이 확장될 전망이다.

오늘날 서구에서는 '영성적이지만 종교적이지는 않은' (Spiritual But Not Religious, SBNR)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는데 이들 영성주의자들은 제도적인 종교에는 속하지 않지만 종교 서적 읽기, 명상, 웰빙, 사회봉사, 환경보호 활동 등을 통해 나름의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영성주의는 말하자면 종교적 성격이 가미된 라이프스타일이다. 영성주의자들은 교리나 의식(儀式)보다는 자신의 행복을 더 중시한다. 기존의 제도권 종교에 인간을 억압하는 측면이 있다고 보는 이들은 영성으로부터 인간의 자유를 발견한다.

SBNR의 부상에는 불교, 힌두교 등 동양종교의 서구 유입과 생태주의 사상의 보급이 크게 한 몫을 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라는 기성 교계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현재 SBNR은 고학력 화이트컬러를 중심으로 그 세력이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 종교계도 금명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종교 소비자 주권 강화, 종교백화점 시대

종교와 영성의 분리는 궁극적으로 종교에 대한 소비자 주권을 크게 강화시킬 것이다. 모태신앙과 같이 특정 종교를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일은 확연히 감소할 것이며 개종(改宗)에 대한 수용의식도 높아질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종교를 마치 상품 구매하듯이 찾아 나서는 시대가 될 것이다.

종교 소비자들은 다양한 종류의 신앙을 이리저리 비교, 체험한 다음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종교를 찍을 것이다. 그리고 이 때 수많은 종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종교들을 자의적으로 합성하거나 혼합하는 현상이 보편화될 것이다.

이는 종교 쇼핑몰 혹은 종교백화점 시대의 개막을 예상케 한다. 물론 아직까지 종교 쇼핑몰이라고 부를만한 건물이나 시설 자체는 없다. 하지만 조만간 그것의 출현을 점치게 만드는 예고편은 이미 우리 주변에 많이 나타나고 있다. 가령 사이버 세상의 인터넷 공간에는 수많은 종교와 종파들이 사원과 교회를 지어놓고 사람들을 초대하고 있다. 서점의 종교 섹션에도 서로 다른 종교들이 나란히 자리잡고 종교 소비자들의 관심을 기다린다. 케이블 텔레비전 방송에서도 종교방송은 채널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이 모든 것들은 사실상의 종교백화점인데, 사람들은 기존 종교들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자신의 영성을 스스로 창시하는 교주(敎主)로 되어가고 있다.

이와 같이 미래사회에 예견되는 종교 다원주의, 영성주의의 발전, 그리고 종교 소비자 주권의 강화는 한국의 신불교로서 불교의 생활화, 대중화, 그리고 시대화를 표방하고 있는 원불교에게 새로운 도전임과 동시에 무한한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전상인 / 서울대학교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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