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인천 교도 / 모현교당
원불교 교도들에게 무엇 하려고 교당에 나가느냐 물으면 거의가 마음공부하려고 간다 한다.
그 분들에게 또 마음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물으면 이번에는 거의가 주춤거리면서 대답을 망설인다. 여기에 원불교 교화의 문제점이 있다.

원불교 신입 교도들은 어려운 학문도 아닌 마음공부쯤이야 못하겠나 싶어 편안한 마음으로 입교하였으나 막상 마음공부를 하려하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신앙생활의 문턱에서 부터 터덕거리기 일수다.

그것만이 아니다. 오랜 세월을 원불교에 다닌 사람들마저도 마음공부를 남에게 설명해 주는 교화요원 역할을 하라면 많은 분들이 난감해 한다.

이것은 원불교 교도들에게 자주 교리훈련을 나게 하건만 교도들의 머리에는 아직도 마음공부에 관한 어떤 등식이 자리 잡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은 형체가 없을뿐더러 그 작용이 무량 무변하여 종잡을 수 없는데 거기에 공부라는 말까지 덧붙여 놓았으니 얼른 답안의 윤곽이나 개념이 서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교도들의 공부와 깨달음을 향상시켜야 하는 교무는 시간 있을 때마다 마음공부를 채근하지만 일반 교도들에게 그 채근은 흡사 하늘을 가리키며 뜬 구름을 서둘러 잡으라는 말처럼 들린다.

마음공부의 길을 모르는데 길을 나서라고 독촉하는 격이다. 불교가 마음공부의 종교이고 보니 우리 모두가 마음공부의 당위성은 잘 알지만 그 방법론은 잘 모르고 있는 소치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 우리 원불교 일반 교도들이 마음공부의 방법론을 머리에 용이하게 입력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고자 하나의 등식을 제안해 본다.

등식의 명제는 '위빠사나(Vipassana)'다. 위빠사나가 마음공부의 방법론이요, 좋은 길라잡이라고 생각 한다.

위빠사나는 산스크리트어이어서 낯설지만 원불교 교도도 부처님을 숭상하는 불자이고 보면 부처님이 몸소 실천하셨던 수행법이고, 부처님이 직접 설법하셨던 귀한 말씀 하나쯤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도 불자로서의 큰 공덕이라 생각한다.

위빠사나의 위(Vi)는 분리한다는 뜻이고, 빠사나(passana)는 바르게 본다는 정견(正見)과 잘 살펴본다는 능견(能見)의 뜻을 함축하는 말이라 한다. 정견(正見)은 부처님이 초전법륜(初轉法輪)에서 설한 팔정도(八正道)의 한 항목이다.

팔정도 중에서 마음공부의 방법론으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정견(正見)과 정념(正念)이다.
정견(正見)은 바르게 보고 바르게 판단하는 것이다. 바르게 본다는 것은 사람이나 사물을 접할 때에 어떤 편견이나 선입관 없이 있는 사실을 사실 그대로 직관하는 것이다.

정념(正念)은 바른 보기, 즉 정관(正觀)이다. 이것은 바른 생각의 '정사(正思)'와 비슷한데 '정사'가 행동하기 전의 일반적인 생각이라면 '정념'은 마음 작용을 진행하면서, 또는 진행한 후에 우리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지 주시하면서 살피는 것이라 했다.

또한 위빠사나는 불교의 삼학인 계(戒:Sila)·정(定:Samatho)·혜(慧:Vipassana)에서 '혜'를 증득하고자하는 '본다(觀)'의 수행법인데 지혜를 창출하는 방법론이기도 하다.

지혜란 무엇인가. 우리들의 머리에 있는 선(善)지식을 선한 마음으로 선용하는 슬기다. 위빠사나는 우리들에게 마음공부와 지혜의 길을 열어주는 불가결의 좋은 수양 명제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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