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住此庵吾莫識 내가 사는 이 암자 나도 몰라라

深深密密無壅塞 그윽하고 깊지만 막힘이 없도다

函盖乾坤沒向背 하늘 땅 모두 가두어 앞뒤가 없고

不住東西與南北 동서남북 어디에도 머물지 않노라.

'태고암가(太古菴歌)'- 보우(普愚 1301-1382 고려 말 승려)

보우 스님의 호는 태고(太古), 13살에 출가하여 '만법귀일(萬法歸一)'의 화두에 몰두하다가 송도 검단원에서 대오했다. 그 뒤 원나라의 석옥 선사로부터 임제종의 법을 이어 받고 귀국하여 공민왕의 왕사가 되었으나 신돈의 미움을 받아 속리산에 유폐, 그가 죽은 후 다시 국사가 되어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폐단을 없앴다.

보우는 삼각산 중흥사 동편에 태고암(太古庵)을 짓고 은거했다. 이 시는 '태고암가' 19편 시 중 맨 첫 장이다. 하나의 풀잎 속에 우주가 있다 하듯이 보우의 보잘 것 없는 암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세계였다. 암자는 자유를 얻은 그의 마음이기 때문.

감흥이 떠오르면 거침없이 시를 읊은 보우는 어디에도 집착하지 말고 막힘없고 걸림 없이 살라고 깨우친다. 모든 법은 하나로 돌아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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