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조 교무 / 분당교당
세상은 무서운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이에 맞춰 우리 원불교도 새로운 미래를 향해 변화의 바람이 불어야 할 것이다. 과거의 패러다임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로 편성되는 변화의 시기에 들어와 있다. 세상이 변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대중들의 요구가 변화를 요구할 때 지도자도 그에 맞는 사람으로 변해 왔다.

일제 식민지 시절에는 독립운동하던 지도자, 민족동란과 남북대치 상황에는 군사독재의 지도자, 이에 항거하는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들이 등장했다.

이제 세상은 인터넷 세계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인터넷이 세상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인터넷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기술들이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고 생활양식을 바꾸고 경제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주도했던 빌 게이츠가 세상을 바꿔놓았다. 스티브 잡스는 인터넷을 핸드폰 속으로 담아 또 다른 세상을 열었다. 이외에도 인터넷을 활용한 게임 개발이며 바이러스 치료 사업 등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세상의 변화를 선도하고 있는 중이다.

일원대도를 판매하는 원불교라는 기업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생산해서 판매해야 한다. 대종사께서 깨달은 교리나 성리를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부족한 면이 있다. 희생과 봉사를 강요하고 내생에 복 짓는 일이다 이렇게 설명해서는 일반인의 관심을 끌기에 역시 부족하다.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뭘 궁금해 하는지 그것을 파악해서 대종사께서 깨달은 바가 '그것은 이렇다'라고 설명하고, 원불교의 교리를 현대적인 언어로 설명해 주는 재해석의 역량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두 가지 문제를 화두로 던져 본다.

첫째는 우리가 세상에 던지는 우리의 언어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100년 전에 유학자 한학자가 이 사회의 엘리트 역할을 하던 시대에 사용하던 고어풍의 한자말이나 한시 구절은 그 뜻은 심오하고 좋은 말인데 이제 그러한 것을 붓글씨로 쓰고 사경하고 음미하고 하는 것은 개인 수양의 방법이지 이 사회에 복음을 전파하는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은 되지 못한다. 특히 부교무들은 어린이 법회에서 교화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통하는 그들의 언어를 사용해야 그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다.

요즘 대학생들이 한학 수업시간에 사서삼경을 수강과목으로 공부하듯이 우리는 교전공부 시간에 고어풍의 언어들을 해석하고 강독하는 시간을 따로 가져야 할 것이다. 그 배운 내용을 일반인에게 전하고 교화할 때 적절한 요즘의 언어를 미리 연마해야 한다.

교전을 외워서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그 말씀을 내려주신 스승님의 뜻을 손색없이 전달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자세는 이제 듣는 사람입장에서 이해하는데 얼마나 효과적일까 하는 생각을 가질 때다.

둘째는 전법스승으로서의 교무는 역설적으로 기업을 운영하는 회사의 책임자로서의 자세를 가져 달라는 것이다. 기업가의 자세라는 것은 무엇을 개발하고 어떠한 새 제품을 내 놓아야 잘 팔릴 것이며 그래서 직원들과 그 부양가족들을 먹여 살릴 것인가라고 끊임없이 걱정하는 자세다.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진정한 마케팅은 우리가 무엇을 팔고 싶은 가가 아니라 고객은 무엇을 사고 싶어 하는가를 묻는 것이다"라고 했다. 사람들의 요구가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파악하지 않고 자기 것에 집착하고 자기 것을 설명하기를 주로 한다면 사람들은 고개를 돌린다.

필름 카메라의 대명사인 코닥이 파산신청을 하게 된 것은 결국 세상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변화를 두려워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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