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윤숙 / 헌산중학교
2011년 12월 어느 날이다.
"선생님 저 부회장 후보 나갈래요"라고 이야기 한다. 나는 "뭐야 너 마음자리 회장한다며!" 라고 답한다.

또 며칠 후 ○진이는 "선생님 내년에 ○리랑 저랑 과담임으로 같이 받아주세요~" 애교석인 목소리로 이야기 한다 "너 맨날 왜 너만 미워하냐고 뭐라 하면서 또 과담임해서 그 원망을 나보고 어떻게 들으라고~"

"에이, 저 받아줄 사람 선생님밖에 없잖아요."

이렇게 12월의 어느 날 주고받은 대화의 끝에 나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고 있음을 느꼈다.

2011학년도는 과담임으로서 중요한 한해였다. 육아휴직으로 1년을 쉬고 있는 나는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함이 있었다. 그리고 2010학년도 복직을 하고 과담임 없이 보낸 6개월은 몸은 편했으나 마음에 허전함이 있었다. 2011학년도에 들어 드디어 과담임을 맡게 됐다. 그 어느 때보다도 학생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졌던 나에게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드디어 총 11명의 학생과 내가 한 과로 한 가족을 이루어 학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두 달이 채 되기도 전에 ○진이의 별명은 '왕경계'가 됐다. 물론 내가 붙여준 별명이다.

참고로 헌산 중학교는 건학이념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학교다. 건학이념대로 다양한 학생들이 학교에 모여서 크고 작은 상처를 가진 아이들이 많다. 그런 아이들을 좀 더 밀착해서 지도하고자 2개의 담임체계를 가진다. 행정은 학급담임, 상담 생활지도는 과담임이 맡고 있다. 그래서 학생, 학부모, 교사가 함께 소통하는데 과담임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진이는 가정환경의 영향으로 마음에 상처가 깊은 아이였다. 그래서 올바른 관계 맺기나 자기표현이 서툴렀다. 그로인해 1, 2학년을 거치면서 크고 작은 사고라 불릴만한 일들의 중심에 있는 친구였다. 그럴 때면 항상 과담임인 나의 어깨는 무거워졌다. ○진이에 대한 선생님들의 뜨거운 관심, ○진이로 인해 불편함을 호소하는 아이들, 학교분위기를 좌우하는 영향력이 나에게는 과담임으로써 큰 부담이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우리 학교여야 ○진이를 변화 시킬 수 있다는 어머님의 확고한 의지와 힘들면 언제든지 요청하라는 교감선생님의 든든한 후원과 동료선생님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하나 더 마음고생 많았지만 함께 성장통을 겪어준 ○진이의 친구들도 고맙다.

그렇게 ○진이와 나는 1년 동안 크고 작은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로인해 느리지만 ○진이와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좀 더 나은 모습을 고민하며 성장하고 있다.

나는 감사하게도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었다. 그래서 헌산에서 교사로 행복했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헌산이 아름다운공간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교사'라는 이름이 얼마나 중요하고 교육에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지를 많은 이들이 이야기 한다. 많은 책임을 가지는 교사로서 그 막중한 책임을 다할 수 있다고 아직 자신 있는 대답은 못한다.

나는 다만 아이들의 행복을 찾아 떠나는 여행의 동행자 역할에 충실하고자 노력한다. 여행의 여정에 지치지 않도록 말동무가 되어주고, 혼자가 아님을, 아이들을 독려하고, 지지한다. 지금까지 나는 헌산의 교사로 행복했고, 앞으로도 헌산을 찾는 아이들의 여행에 행복한 동행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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