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 평화, 발전의 비전과 현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기 보다는 주는 존재이다"

▲ 장필화 교수.
'우리 시대의 코드를 읽자'라는 취지로 교법의 사회화 구현에 힘을 쏟고 있는 소태산아카데미가 제7기 개강식을 갖고 한국 지성인들과의 소통을 시작했다.

6일 은덕문화원에서 열린 개강식에서는 장필화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 교수가 '평등, 평화 발전의 비전과 현실'을 주제로 특강해 참석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장 교수는 특강 서두에서 "발전이라는 문제를 여성의 시각에서 재고해 보고자 했다. 한국은 국제적으로 발전의 우수사례로 많이 거론되고 있지만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불평등 구조가 온전하였는가를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보려고 했다"며 "국제기구들의 움직임은 각각의 나라에 흩어져 있는 여성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국가의 경계를 넘어선 혁명적인 공동체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시장에서 화폐를 기반으로 하는 교환가치를 중심으로 간주하는 사회에서 여성과 사회적 약자들이 평등과 평화를 누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 후 그는 인간의 욕망의 방향을 새롭게 할 수 있는 '나눔 경제(Gift Giving Economy)를 제안했다.

한국의 발전과 여성

한국은 정말 눈부시게 발전해 전세계의 관심의 대상이 됐다. 숫자적인 지표로만 보더라도 1962년에 82달러에 불과했던 GNP가 2008년에 와서 19,296달러에 달했다. 무려 200배가 넘게 성장했다. 이는 정부주도형 혹은 수출주도형 경제에서 비롯됐다. 60∼70년대 정부가 주도한 노동집약적 수출산업의 주역은 단연 여성이었다.

특히 15~20세까지의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는 그 시기 남성보다 그 절대숫자가 더 많았다. 현재와 같은 교육상황이라면 대부분 학교에 다닐 젊은 여성들이 공장에서 저임금 노동자로서 정확하고 빠른 손놀림으로 수출주도 경제를 견인했다. 그러나 여성을 개념화하기 보다는 결혼 전에 잠시 머물러 가는 임시적, 보조적 노동자라는 관념이 지배적이었다.

가족차원에서 이들의 임금은 형제 가족 의 교육비를 조달하는 기초가 됐지만 이에 대한 공식적인 인식이나 보상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찾기 어렵다. 똑 같은 지적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여성들은 집안에서 부모를 도와서 대를 이을 남자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저임금 노동자에서 도시빈곤지역 저소등층으로 남게 됐다.

한마디로 말하면 한국산업을 성장시킨 역군의 역할이 결국은 인정받지도 못하고 개인적으로 보상받지도 못한 여성들의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잘살게 됐다.

정부가 주도한 총 6차에 걸친 경제개혁 5개년계획을 봐도 여성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여성이라는 존재는 개발을 둔화 혹은 저해하는 출산력을 가진, 그래서 통제되어야 하는 대상이었다. 정부의 계획서에 나타난 여성은 열심히 일하고 생산하고 아이를 낳아서 길러서 그것이 정말 이 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모습이기보다는 출산을 통제해야 하는 여성으로 나타났다. 뒤늦게 여성의 노동력을 살려서 한국 경제성장의 다음 단계로 도약하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는 이미 여성들에게 기회가 가지가 않았다.

여성 인권문제를 이끌어 온 국제기구

유엔은 현재 비대해진 관료 조직화가 빚어내는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볼 때 다른 어떤 영역보다 여성영역에서 각국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유엔은 창설 원년부터 여성지위위원회를 만들었다. 1960년대 이후 서구에서 새롭게 일어난 여성운동의 성과에 힘입어 유엔은 1975년을 여성의 해로 선포하고 멕시코시티에서 제1회 세계여성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회에서 1975~85년까지를 '평등 발전 평화'를 모토로 한 여성 발전 10년으로 제정했다. 이때부터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고 그 사이 유엔은 세계적으로 여성 발전을 위해 괄목할만한 역할을 했다. 유엔에서 여성관련 행동은 특히 아시아 지역의 오랜 역사 문화적으로 가부장제 전통이 강한 국가들의 경우, 새로운 사회변화를 모색하는 직접적 계기가 됐다.

한국에서는 정부대표가 참석하지 않았지만 1975년 메시코시티에서 110개국이 참가한 세계여성대회가 열렸다. 회원국 중 제3세계를 구성하는 77개국 대표들은 그들의 역사적 특수성에 입각한 선언문을 독자적으로 발표했다.

선언의 요지를 살펴보면 여성이 역사적으로 발전에 기여해 왔고 평화를 지키는데 기여해 왔다는 것을 인정해야 평등이 이루어진다. 여성이 평등해야 사회의 발전과 평화에 이바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평등, 평화, 발전은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서로 상보적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이 발전과 평화의 문제를 더 적극적으로 끌여들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1975년 제3세계 여성들이 모여서 논의했던 것을 다시 한 번 되살려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의 의미는 평등의 문제를 가지고 30~40년 싸왔으므로 많은 것이 이뤄졌다고 한편으로 자축할 수 있지만 여전히 성폭력, 여성의 낮은 취업률 등과 같은 문제가 많이 남아 있다.

시장과 화폐의 잣대

현재 사회는 화폐를 매개로 '시장'을 통해 이루어진 거래를 양적 수치로 측정 평가하는 GNP가 하나의 척도가 돼서 한 사회의 발전을 평가하고 있다. 거기에서 보면 빠져 있는 것들이 있다. 가사노동이 화폐로 환산되면 미국의 경우 GNP가 40%가 올라간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가사노동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GNP하고는 상관이 없다.

예를 들면 내가 옆집에 가서 파출부로 일해서 돈 받고 또 옆집에 사람이 우리 집에 와서 파출부로 일해서 돈을 주고 하면 GNP가 올라간다. 그렇지 않고 각자가 자기 집에서 일을 하면 아무런 경제성장이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된다. 이것이 화페성장과 관련된 화폐로 경제를 가늠하는 맹점이다. 이런 것들이 양적인 계산이 질적인 가치와는 상관없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을 예로 들면 숲을 치우고 거기에 골프장을 만들고 거기에다 비료를 치고 환경을 피폐하게 하면 할 수록 그 지역의 경제성장 잠재율은 올라가는데 길게 보면 그 다음세대에 짐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당장은 그게 우리 성장이고 업적이라고 하는 문제가 계속되는 한 여성으로서 또는 사회적인 약자로서 경제발전의 동등한 파트너가 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더 높이 올라가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 성공의 척도가 되는 것은 인간 관계, 공동체, 그리고 자연계와 관계를 파괴한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런 문제를 일으킨 것과 똑같은 마인드 세트(마음가짐, 사고방식, 가치관)로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새로운 접근을 위해서는 문제를 일으킨 마인드 세트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새로운 가치인 '나눔경제(Gift Giving Economy)'를 제안해 보고자 한다.

새로운 가치, 나눔 경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바꾸기 위해 다른 사고 체계와 방식을 연습해야 한다. 시장 교환에 기반한 사회에서 살아 온 우리들에게 기프트기빙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과 자연, 생명을 사유해보면 곧 깨닫는다.

서양 전통에서는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라고 한다. 생각하는 사람, 생각하는 존재라고 본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인간은 호모 도난(Homo Donan)이라고 본다. 도난이란 희랍어로 주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래서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주는 존재이다.

자연을 보면 자연은 아낌없이 준다.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공기에 대해서 우리는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 물도 마찬가지다. 자연에 대해서 우리는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데 이것이 기프트기빙의 좋은 예다.

시장사회는 돈을 매개로 등가로 주고받는 교환 행위이지만 기프트기빙은 (돈을 매개로 하지 않고도) 직접적으로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만족시키고 친밀함, 소통, 공동체 등 긍정적 관계를 만든다.

시장의 거래는 자기중심적이다. 이것과 비교해서 대가없이 준다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나의 만족 때문에 주는가 상대방의 필요로 한다고 내가 판다하기 때문에 주는가?

시장의 거래에서는 내가 이익을 취해서라는 자기중심성이 있는데 비해서 기프트기빙은 상대방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 것을 알아채고 판단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런 점에서 타자중심적이다.

그리고 판단을 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관찰, 관심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그 사람이 뭘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없고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 중에서 내가 뭘 줄 수 있는지를 판단하기가 어려워진다.

시장교환사회에서 살면서 어떻게 기프트 기빙을 할 것인가? 직업을 가질 때 그 직업이 어떤 종류의 직업인가에 대해서도 기부트기빙의 중요한 원리가 되는 쪽에 기여할 수 있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 공해를 입히거나 결과적으로 사람에게, 이 사회에 부담이 되는 파괴적인 직업이 아니라 그것이 전체의 기프트기빙의 패러다임을 일반화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는 쪽으로 해야 한다.

우리가 기프트기빙을 다시 배우고 일반화하는 데 좋은 예는 토착문화에 있다. 지금도 덜 산업화되고 덜 도시화 된 곳에서는 풋풋함이 있다. 그냥 주는 것이 살아있다. 그러한 토착문화가 유지되고 있는 토착문화의 장소. 그것이 한국일 수도 있고 다른 나라일 수도 있다.

시장사회가 침범하지 않는 그것을 통해서 더 많이 배우고 느끼면서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회복할 수 있을까? 어떤 프로젝트를 함으로써 그것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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