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霞朝作飯 산 노을로 아침밥을 짓고
蘿月夜爲燈 밤엔 담쟁이덩굴 사이로 보이는 달로 등불 삼아
獨宿孤庵下 홀로 외로운 암자에 묵는데
惟存塔一層 오로지 한 층만 남은 저 탑.
'승축에 붙여(題僧軸)'-양녕대군 이제(讓寧大君 李禔 1394-1462 조선 태종의 장남)
조선 태종의 맏아들인 양녕대군은 1404년 왕세자로 책봉되었는데 학문에 게으르고 행동이 무절제하다고 1418년 폐위되어 둘째 동생인 충녕대군에게 왕세자 지위가 넘어갔다. 그 후 풍류를 즐기면서 여생을 보낸 그는 여러 번 탄핵을 당했지만 세종의 배려로 무사했다. 시와 글씨에 뛰어난 양녕대군은 남대문의 다른 이름인 숭례문(崇禮門)의 현판을 썼다고 전해진다.
이 시는 암자에서 탑을 보고 지은 시이다. 산의 노을로 아침밥을 짓고, 담쟁이덩굴 사이로 보이는 달로 등불을 삼겠다는 것은 분명 풍류적이다. 또한 한 층만 남은 탑을 보면서 외롭게 암자에서 묵는 자기 신세를 한탄하는 장면은 아주 서정적이다. 형식과 명분, 권력투쟁에 얼룩진 궁중을 떠나 그는 자유롭게 살았다. 살아서는 왕의 형이고 죽어서는 중의 형이니 거리낄 것이 무엇이랴 면서.
이원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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