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조화로운 삶 연결
간소함으로 즐거움 누려

▲ 등구재 오창진 씨.
▲ 자물쇠 없는 복전함.
한 달이 지났다.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펜을 들었다. 다시 한번 스코트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을 펼쳐든다. 흑백사진 속에 스코트의 주름은 노동과 사유가 적절히 섞여 그의 벽돌집처럼 견고히 건설돼 있었다.

또 다른 스코트 니어링이 내겐 '관념의 유희'에 그친 화두를 계속 던져온다. "첫해 화두가 아무 것도 바라지 말자 였다"고 말하는 오창진(53) 씨 였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가파랐다. 일명 깔딱고개로 불리는 등구재, 그 길은 황치길로 길게 이어졌다. 남원에서 함양으로 이어진 그 길은 현재 지리산 둘레길 3코스에 위치하고 있다. '다랭이논'을 언급하면 더 쉬운 소개일까?

등구재에서 만난 그는 곱슬임에도 잘 넘긴 머리가 수염과 자연스럽게 연결돼 있었다. 그는 누구의 입을 빌리지 않아도 충분히 '도사'의 풍모를 띠었다. 자칭 오 도사다.

"인생의 전환점은 쉽게 찾아오지 않죠. 결정적인 자극 없인 궤도수정이 어렵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해 괴롭습니다. 욕심을 버리면 된다는 것도 알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괴롭습니다. 이것은 관념적 유희로서만 알기 때문이죠."

그는 진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이내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이혼한 아내가 두 아들을 맡은 후 그의 생활은 자유스러워졌다. 그의 곁 봉고차 한 대, 그 안에서 명상 음악이 흘러나온다. 옆의 천막은 여름살이를 하는 곳이란다. 얼핏 보면 둘레길에 있는 평범한 쉼터같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자물쇠 없는 복전함과 편하게 이용하라는 팻말, 넉넉한 음료가 아무 구애없이 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반경 1Km 밖을 잘 돌아다니지 않는 그는 왕양명과 성철스님의 철학이 담겨있는 내용들을 입에 담았다.

"내 마음 밖에 무엇이 있는 게 아닙니다. 즉 심외무물(心外無物)입니다. 일주문에 먼지가 쌓일 수 있도록 돌아다니지 말라는 스님의 말씀도 가슴에 와 닿습니다"라는 말에 그의 심경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이것은 멀리 가지 않아도 가까이서 얻는 것이 더 크다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47세에 잘 되던 사업이 흔들렸죠. 당시까지 단체급식 사업으로 한 달 매출 2억에 순수익 4천만 원, 직원만 20명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업체의 식중독 사건으로 인해 모든 걸 잃었습니다. 이 이후 보험회사 직원, 벌초작업, 일용직노동자까지 했습니다. 나중에는 절에 들어가기도 했죠."

모두가 생활을 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다 그는 어느 순간 내면에 침잠해 있던 의식의 일깨움을 알아차렸다. '굶어 죽어도 좋다'라는 생각은 그의 내면의식의 정화였다.

"보통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 순간부터 원하는 온갖 것들이 머리 속을 맴돌 겁니다. 그때 단호해야 합니다. 극한 상황이 와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선언해야 합니다."

한때 대전 보문산 주변에서 생활했던 그는 모든 욕심을 버리기로 한 순간의 자신의 결심을 일깨워 이야기 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나서 간편한 생활에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스코트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을 권한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그가 소개한 스코트 니어링은 미국의 사회운동가이자 교수, 강연가 였다. 그는 20살 연하의 아내 헬렌과 자본주의 체재를 등지고 버몬트 숲으로 향했고 삶에 적정한 정도의 노동과 정신적 작업을 조화롭게 꾸렸던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1대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고, 2대는 스코트 니어링, 3대는 법정스님이라면 4대는 제가 되고 싶습니다."

그가 그만큼 자연속의 삶을 추구하고 있는 지 모른다. 계보가 조금 어수선했지만 발상과 의지는 참신했다. 50만 원 이상을 소유하지 않는다는 그다. 창원 MBC 프로그램에 소개 된 후 얼굴이 알려졌지만 돈에 연연하지 않는다.
▲ 그가 생활을 하고 있는 봉고차 내부.
"작년 겨울은 밥과 된장, 김치만 먹으며 보냈습니다. 우리는 못 먹어서 아픈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먹어서 아프죠. 간소한 식단만으로도 건강히 지낼 수 있습니다."

그의 말 속에서 간편한 그의 생활 일면을 알 수 있다. 자연 그대로를 즐기는 그의 삶이 간단한 음식과도 연결된다.

그의 정신세계도 우주와 연결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하나라는 것이다. 간단한 것 같지만 깊은 묘리가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세계는 텅 비어 있습니다. 원자를 이루는 핵과 전자, 그 사이의 거리는 어마어마하게 먼데 아무 것도 없습니다. 거의 무에 가까운 핵과 전자만을 모아 놓으면 우주는 사과 한 알의 부피에 담길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한 덩어리에서 시작했다는 빅뱅이론처럼 우주의 모든 것은 하나입니다."

그는 재작년 겨울엔 말기 암 환자와 살며 봄을 맞았다. 삶을 포기한 채 지리산을 찾은 사람이었다. 지금은 이 아래 마을에서 살고 있다고 전했다. 그가 등구재에 있으면서 삶을 살리는 구원자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한의학 공부도 누군가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의지가 발원했다고 볼 수 있다.

"죽기 위해 오는 사람들도 대화를 하고 하룻밤 재워 보내면 마음을 다시 추어잡는 것을 봅니다. 여럿 살렸지요. 올해 한의대에 도전했으나 낙방했습니다. 이번 결과도 거만해지지 않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의 허허로운 생활이 이런 심정일까. 사람을 살렸다는데 의미를 두기 보다 지속적인 생활을 바라는 그의 자세는 자연 속에서 얻는 철학이 아닐까 싶다. 돌아올 때 쯤 오도사의 단출한 삶이 부러웠다.

얼마 전 서점에서 〈조화로운 삶〉을 한 권 샀다. 책을 읽으며 오창진 씨는 버몬트 숲에 이미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언제까지 등구재에 머물지 모르지만 스코트 니어링처럼 만족하는 삶을 꾸리며 행복하길 바랐다.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 그의 호탕한 웃음이 잊혀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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