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年一齒落 작년에는 이 한 개 빠지더니

今年一髮白 금년에는 머리털 하나 세었다

固知老不免 늙음을 어쩌지 못할 줄 알지만

奈此便相迫 이렇게 서로서로 재촉하누나

役役猶未休 분주하여 오히려 쉬지 못하고

萬里事劍戟 만 리 밖에서 싸움을 일삼다니

功業無足取 공과 업적은 취할 것이 못되고

虛名亦已極 헛된 이름은 이미 지극하도다

庶幾謝簪紱 아마도 벼슬을 사양하고서

歸來保迂拙 졸렬을 피해 돌아가 지키리.

'양덕 가는 길에(陽德途中偶吟)'-신숙주(申叔舟 1417-1475 조선 문신)


신숙주의 호는 보한재(保閑齋)로 중국어, 일본어, 몽골어, 여진어와 이두글자까지 능통하여 훈민정음 창제와 보급에 큰 공을 세웠다. 저서로 '보한재집' 등이 있다.

이 시는 성종 때 영의정인 신숙주가 평안도 양덕의 여진족을 소탕하러 가는 길에 지은 시인 듯하다. 성삼문은 이상이 중요하고 남는 것은 대의(大義)라고 여긴 반면, 신숙주는 현실이 중요하고 남는 것은 업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조선 초의 문물제도를 크게 정비한 신숙주는 이 시에서 공과 업적, 이름이 늙음 앞에 헛되다고 탄식했다.

당대에 신숙주는 대사를 처리하고 대의를 결단하는 것이 강하(江河)를 터놓듯 시원스럽다고 평가받았지만, 성리학에 의지하여 대의명분(大義名分)을 중시한 사림파들은 그를 변절자라고 비웃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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