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혜경 교도 / 평화의친구들
아기가 아장아장 걷다가 의자에 부딪혀 넘어졌다. 아팠는지 으앙 울음을 터뜨린다. 엄마는 아기를 안아들고 의자를 탁 때리며, "이런 나쁜 의자, 우리 아가한테 누가 그랬어, 괜찮아, 울지마" 하며 아이를 달랜다. 흔히 접할 수 있는 모습이고 별로 이상한 점이 없어 보이지만, 방금 아기는 '아, 누가 나를 아프게 하면 때려야 되는구나'를 배웠다.

아이들은 스펀지 같아서 깨끗한 물이든 오염된 물이든 가리지 않고 쉽게 흡수한다. 무엇을 흡수하며 자라느냐에 따라 구김 없이 밝은 아이가 되기도 하고 폭력적인 아이가 되기도 한다.

인격이 형성되는 시기에 부드럽고 편안한 분위기를 경험하고 이해와 존중을 배운 아이들은 주변을 평화롭게 만드는 능력을 가진 어른이 된다. 평화 감수성과 능동적 평화 능력을 갖춘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세상은 그 만큼 더 따뜻해진다. 좀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 우리는 평화교육을 한다.

평화의 친구들이 주목하고 있는 평화교육 대상은 상처받은 청소년들이다.

어른들이 무의식적으로 던져 놓은 폭력성에 노출되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난폭해진, 자기 내면에 갇혀버린 본능적 충동을 제어할 수 없게 된 아이들은 계속해서 주변과 스스로를 아프게 하는 일을 반복한다. 그 구멍 난 마음을 채우고 치유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평화의 친구들이 생각하는 평화교육이다.

평화교육은 뭔가 특별하고 거창한 것이 아니다.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공간 안에서 다양한 주제로 함께 이야기하고 노는 것이 전부이다. 물론 교육 효과를 높이기 위해 연구 과정을 거친 강의안과 교수법을 사용하긴 하지만, 그런 기술적인 부분들이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아이들이 변화하기 시작하는 순간은, 자신이 충분히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이다. 처음 교육 장소에 들어서면 노려보고 경계하는 아이들의 눈빛에 주눅이 들 정도로 그 기운이 무섭지만, 나는 너희들 위에 서서 가르치려는 사람이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웃고 떠들러 온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면,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풀어진다.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약속'이라는 이름으로 한가지의 제재만 주어지는데, 누군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아주 사소한 이야기라도 집중해서 듣는 것이다.

진지한 자세로 주의 깊게 듣고 공감해주면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보다 자신 있게 드러내기 시작하고, 누군가 자신을 존중하고 지원해준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상처로 딱딱해진 마음이 부드럽게 이완된다.

물론 한 번에 모든 아이들이 어머나 세상에 하고 변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귀를 닫아버리는 아이들도 있고 자유로운 분위기 자체를 못 견디는 아이들도 있다.

중요한 것은, 단 한 명이라도 마음에 공명을 얻어 변화의 계기를 얻게 되는 것이다. 한 명 한 명에게 충분히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소수의 인원으로 교육을 구성하는 것이 좋은데, 그런 면에서 가장 좋은 평화교육가는 부모님이다.

자꾸 아이들에게 뭔가 요구하고 기대하는 모습을 보이기보다, 너의 가장 든든한 지원자이자 너를 가장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이 바로 나임을 진심으로 전하면, 아이들은 스스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변화가 바로 시작되지 않는다고 포기하는 것은 금물이다. 내가 나의 진심을 최선을 다해 힘겹게 전하지 않으면, 아이들도 힘겹게 본인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다. 오늘, 사랑하는 내 아이를 위해 평화 교육가가 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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