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園日暮亂飛鴉   양원에 해질 무렵 갈가마귀 어지러이 날고

極日蕭條三兩家   날이 다 하니 쓸쓸하도다 두세 채의 집이

庭樹不知人去盡   정원의 나무는 집주인 떠난 줄 미처 모르고

春來還發舊時花   봄이 오자 옛 시절의 꽃을 활짝 피웠구나

'산방에 봄이 오니(山房春事)'- 잠삼(岑參 715- 770 당나라 시인)

몰락한 가문에서 태어난 잠삼은 서른살부터 하급 관리로 국경 변두리인 중앙아시아를 떠돌면서 전쟁의 참혹성과 이국적인 풍물을 노래하여 변방시인이라 불렸다.

당나라 사람들은 잠삼의 능숙한 표현양식, 자유로운 은유의 사용, 풍부한 상상력을 예찬해 마지않았다. 이 시에도 그의 뛰어난 은유적 상상력이 엿보인다. 바로 '정원의 나무가 집주인이 떠난 줄을 모르고 옛 시절의 꽃을 피웠다'는 표현이다. 이 은유 속엔 그의 힘겨운 삶과 깊은 고뇌가 암시되어 있어 서글픔까지 적셔온다.

꽃이 핀 아름다운 봄에 인생의 쓸쓸함을 느낀다면 그는 이미 철인이다. 생로병사의 화두에 사로잡힌 석가가 화려한 왕위를 우습게보고 수도승이 된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인생이란 해가 뜨면 사라지는 아침 이슬처럼 순간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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