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프로그램에서 국제마음훈련원 역할 생각하다
마음훈련 도량위해
대중 공감 필요

▲ 미황사 풍경.
해남 땅끝마을 송지면 서정리.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싼 달마산 기슭에 천년고찰 미황사(美黃寺)가 있다. 동백나무 군락을 따라 절집을 향하는 오르막길은 땅 끝까지 오고도 미처 내려놓지 못한 조급함을 다시 한 번 내려놓게 한다. 20여 분 남짓 걷는 동안 한결 비워진 마음으로 절집에 다다르면 대웅보전의 용마루 뒤로 달마산이 보인다. 봉우리 봉우리가 그대로 수만 수천의 부처님이다.

신라 경덕왕 749년에 창건된 미황사는 조선 후기까지 융성을 거듭하다 100년 전 주지 혼허(渾墟)스님을 마지막으로 100년 동안이나 빈 절이었다 한다. 하지만 100년이 흐른 지금, 미황사는 다시 중흥기를 맞고 있다. 서울에서 차로 5시간이 더 걸리는 이 땅 끝에 자리한 절집 수행프로그램에 다녀간 이들이 지난 십년 간 무려 10만 명이다. 초파일이면 지역주민들은 미황사에서 노래자랑을 벌인다. 템플스테이 명소일뿐 아니라 지역공동체의 모범으로 꼽힌다. '지게스님'이란 별칭을 얻을 만큼 열심히 빈 절의 복원에 힘을 쏟고 대중과 함께 할 프로그램을 궁리해 낸 주지 금강 스님의 공이 컸다.

"21세기 한국 불교는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산중사찰이 정신적·육체적으로 피곤한 이들에게 안식처가 되어야 하고, 참 진리를 찾으려는 이들과 함께 수행해야 합니다."

지난 1998년 백양사 무차선회(無遮禪會)의 실무를 맡기도 했던 금강 스님은 "물질적 욕망으로 삶의 토대가 무너지고, 인류역사가 황폐화되어 가는 시기니 수행을 통해 사람들에게 힘을 줘야 하는데 정신적 지도자들이 무엇을 하고 있느냐"며 불가의 묵은 수행을 꾸짖던 서옹 큰스님의 말씀을 늘 가슴에 둔다고 했다.

80년 광주 원각사에서 법당으로 피해오는 대학생들을 만나며 사회과학서적을 탐독했고 중앙승가대 총학생회장을 맡아 불교개혁에 앞장서기도 했던 금강 스님. IMF때는 실직자를 위한 선수련회를 마련하고, 2010년에는 만해의 불교유신론 100주년을 빌어 시대과제에 불교가 더 헌신해야 한다는 '21세기 불교유신론'을 주창하는 등 시대와 소통에 앞장서왔다. 스님의 그런 뜻이 보다 구체화된 곳이 바로 미황사인 셈이다.

2000년에 어린이 한문학당, 2002년 한국 불교 최초 템플스테이를 시작했고 2005년부터 7박8일 집중 수행 프로그램 '참사람의 향기'를 만들어 매달 운영해왔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지친 사람들, 잘사는 길을 외부에서만 찾았던 사람들이 마침내 내부로부터 길을 찾고자 미황사 수행프로그램을 찾아옵니다."

금강 스님과 함께 '참사람의 향기'를 운영해온 적멸스님의 말씀이다. '참사람의 향기'에 참여하는 이들은 교사, 사업가, 주부 등 연령 계층이 다양하다. 하지만 물질만능, 무한경쟁의 시대풍토에 상처 입거나 회의를 느낀 이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말하자면 미황사의 성공은 특별난 프로그램이나 시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대중들이 겪는 아픔을 알아채고 먼저 손을 내민 결과인지도 모른다. 국민소득이 2만 달러이면서도 내전 중인 미얀마나 종교 분쟁으로 혼란한 스리랑카보다 행복지수가 낮은 곳, OECD국가 가운데 자살률 1위국이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 미황사 좌선 프로그램.
▲ 적멸 스님과 좌담하고 있는 원불교100년기념성업회 관계자.
그렇다면 이런 시대에 원불교가 준비하는 국제마음훈련원의 역할은 어떤 것일까.

"일상을 벗어난 수행체험에만 그친다면 그 역시 소비적입니다. 수행을 통해 마음의 힘을 회복하고 그 힘이 일상의 변화로 이어지는 곳, 불법시생활, 생활시불법이 이뤄지는 곳이어야겠죠. 미황사가 지역사람들과 함께하는 모습 역시 새겨야 할 대목입니다."

미황사 답사에 나선 100년기념성업회 김경일 교무는 원불교 마음훈련원이 기존 수행 시설과 가장 구별되어야 하는 지점이 바로 '생활 속 건강인'을 만드는 데 있음을 강조했다.

"미황사에서는 Teacher의 중요성을 실감했어요. 한 지도자의 역량과 비전이 수행프로그램을 꾸준히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답사에 동행한 김일덕 교무는 비전과 열정만이 수행 프로그램을 성장시키고 지속가능하게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미황사 '참사람의 향기'는 집중선 프로그램, 템플스테이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원불교 훈련법을 정기와 상시로 구분해 다양한 훈련공동체들을 만들고 관계를 엮어간다면 마음훈련원의 방향이겠죠."

안세명 교무는 원불교 훈련법의 장점을 잘 살린 프로그램이야말로 마음훈련원과 대중을 잇는 통로가 될 것임을 역설했다.

답사에 동행한 곽계환 교도는 "마음치유를 위한 다양한 접근, 즉 생명과학, 한의학 등 타 분야와의 연계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마음치유의 결과를 형상화하고 수치화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섬세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지리적 여건, 시설 면에서 그리 탁월한 조건이 아닌 미황사가 조계종 템플스테이 성공사례로 꼽힌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미황사 프로그램이 '포교'나 '수익'을 앞세우기 보다는 소박하게나마 종교의 참 역할을 해내려는 뜻에서 출발되었기에 대중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원불교의 국제마음훈련원이 놓치지 말아야 할 지점이 바로 이 대목이 아닐까 싶다. 지나치게 운영을 염두에 두고 대중의 취향이나 편의, 수익성 등에 주목한다면 오히려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 크고 작은 사설 명상센터들이 운영난에 직면하는 까닭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가 왜 마음훈련도량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지 그 근본을 놓치지 않는다면, 성장에 주목하느라 뒷전에 밀쳐둔 '마음의 문제'가 우리 삶을 얼마나 새롭게 바꿀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논의하고 실천해 나갈 터전이 열린다면, 대중은 고기가 물을 찾아오듯 자연스럽게 마음훈련원으로 모여들 것이다. 사람들이 몇 시간씩 차를 달려 땅끝마을 절집을 찾아가 불편한 절집살이를 자처하는 것처럼 말이다.

100여 년 전, 궁촌 영산에서 시대의 고통을 함께 하고 새로운 삶의 가치를 공부하는 회상이 열렸듯 우리 시대의 한복판에 세상을 품는 넉넉한 마음공부도량이 열리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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