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가의 화두로 자주 등장되는 것으로 위의 원문은 '승문 여하시조사서래의 조주운 정전백수자(僧問如何是祖師西來意 趙州云庭前栢樹子)'이다.
한 수도승이 달마가 무슨 생각을 갖고 서역 인도에서 동토 중국으로 건너왔는지를 조주에게 물었다. 조주는 거처하던 관음원(觀音院), 일명 백림사(栢林寺) 뜰 앞의 잣나무를 가리키면서 그렇게 답한 것이다.

조주가 마침 잣나무를 보고 뜰 앞의 잣나무라 했을 따름이며, 그때 소나무를 보았다면 뜰앞의 소나무라 했을지도 모른다. 박광전 종사는 〈숭산논집〉에 말하기를 "반야심경에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밝혔으니 현실의 여여한 뜰 앞의 잣나무가 조주의 눈에 보였을 따름이다"고 했다. 깨달은 조주의 입장에서 무어라 답해도 아무런 분별이 없다는 것이다.

중국 선종의 역대 선사들을 보면, 초조 달마에 이어 혜가, 승찬, 조주, 임제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화두는 초조 달마의 동래(東來)에 대하여 8조 조주가 답한 내용이다.

달마가 동쪽으로 온 것은 평범하게 불법을 전하러 온 것이지 특별한 이상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한 제자가 질문하자 조주 앞에 보이는 잣나무를 보고 바로 평상심으로 뜰 앞의 잣나무라 했고, 또 불심이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 만유 어디에나 있음을 시시하고 있다. 한 스님은 조주가 말한 뜻밖의 답변에 황당했을지 모를 일이다.

사실 달마 대사는 불립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 하는 법을 가르치려고 서역에서 동토로 왔던 것이다. 그러나 중생의 시각에서 달마 대사가 무슨 큰 일이나 전하려고 동토에 온 줄로 착각한 것이다. 조주 스님은 그 질문을 바로 알아채고 평상심을 상징하는 뜰 앞의 잣나무라 하여 선가의 격외 화두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어느 날 소태산대종사는 봉래정사에서 한 제자에게 "벽에 걸린 저 달마 대사의 영상을 능히 걸릴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문정규 답하기를 "능히 걸리겠나이다"고 대답했다. 대종사에 그에게 "그러면 한 번 걸려 보라"고 했고(〈대종경〉 성리품 14장), 또 달마대사의 "응용무념을 덕이라 한다"(인도품 17장)라고 하며 달마를 칭송했다.

불교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란 영화가 한국에서 상영된 적이 있다. 배용균 감독에 의해 제작되고 1989년 개봉됐다. 죽음의 무상, 집착과 번뇌라는 삶의 근원적 고뇌를 깨닫게 하는 것으로 불교의 해탈을 상징하는 영화이다.

달마가 서역에서 동쪽으로 와서 불연을 맺었으니, 우리는 뜰 앞의 잣나무를 새기면서 성리 연마를 부단히 해야 할 것이다. 소태산대종사는 서역에서 온 불법을 동방의 새 불법으로 혁신하였다. 원기20년 〈조선불교혁신론〉을 통해 법륜상전의 소식을 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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