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은 가사(歌辭)에 관심이 많았지만 자신이 지은 작품은 남기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시조를 여러 수 남겼는데 선시조(禪時調)라 할 만큼 좋은 선시 작품이 보입니다.

부르면 부를수록 부처도 나도 없다
불(佛)과 내가 구공커늘 천지인들 있을쏘냐
진대지 우주 안에 아미타불 소리뿐.

이건 성가 84장 <염불좌선가>에 일부로 쓰이는 <염불>이란 작품이고, 다음은 성가 110장으로 쓰이며 애송되는 <연화대>입니다.

연잎에 비 내리니 구슬만 궁글더라
그다지 나린 비가 흔적이 어디런고
이맘도 저러하면 연화대인가 하노라.

처음부터 노랫말로 지은 작품도 꽤 있습니다. 성가 6장 '영산춘풍 다시 불어'(대종사 찬송가)와 성가 12장 '어리석은 우리 중생'(석존찬송가)는 말할 것도 없고, 32장 '번뇌에 속타던'(결제가)과 33장 '거룩하신 스승님들'(해제가) 및 36장 '우리 회상 법고소리'(개교경축가) 역시 노랫말이 좋습니다. 그래도 저는 44장 '풍랑이 그치었으니'(위령가)가 가장 맘에 드네요. 특히 3절은 선시적 발상이 무르녹아 있어서 아름답다고 하겠습니다.

(1)풍랑이 그치었으니 이제는 편안 하시리
피안을 바라다보며 가쁜 숨 내쉬어 보세

(2)원력을 굳게 세운 후 착 없이 길을 떠나오
한 생각 청정하올 때 연대의 문이 열리리

(3)한 물건 홀로 드러나 때때로 얼굴 나투니
옛 가지 봄 돌아올 때 또 다시 꽃이 피겠네.

그리고 대종사 열반에 즈음하여 지은 53장 '스승님을 뵈옵던 그 날부터'(추모의 노래)도 좋죠. 그러나 여기에 숨은 비밀이 하나 있다는 거 대개 모르실 겁니다. 후렴에 나오는'내 등불 밝게 켰다가/후일에 이 몸 마칠 때에/또 다시 뒤를 따르리'에서 앞의 두 줄은 기독교의 찬송가 '후일에 생명 그칠 때'(통일찬송가 295장)에서 따온 것이랍니다. 장례식 때 쓰는 찬송가죠. 원산이 남기고 간 〈우당수기〉 첫머리에 이 찬송가를 적어 놓았으니 우연이란 핑계는 통하질 않네요. 조금 쪽팔리지만 넘어갑시다.

누가 뭐래도 원산은 우리 회상 최고의 작사자임을 부인할 길 없습니다. 두루마기 입고 있는 사진을 보노라면 서구적 마스크에 맑고 고운 눈매가 절로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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