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홍인 교무·만덕교당(논설위원)
토요일 집단상담에 참여한 적이 있다. 생애곡선을 그리면서 내 삶의 가장 중요한 경험을 표시하여 곡선을 그리는 것이었는데,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으로 나누어 표시하도록 지도자가 안내했다.

기준점을 중심으로 긍정적인 생애경험은 위로 가게 그리고, 부정적인 생애경험은 아래로 표시하여 그리도록 했다. 그런데 내 생애곡선은 출가의 시작점이 되었던 대종사님의 일대기를 보는 시기에서부터 오르다가 출가한 해에 가장 정점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첫 발령지에서의 경험은 나를 추락하게 했고, 그 후 대산종법사님을 모시는 시기에서 또 다시 긍정적인 곡선으로 올라서고 있는 것을 보았다. 출가한 지 30여 년을 맞이한 지금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중이다.

집단상담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참가자의 생애곡선에는 가치가 숨어 있었다. 기쁨이 숨어 있었다. 그리고 절망과 고달픔과 인내도 숨어 있었다. 특히 나의 생애곡선은 환경적인 불편이나 어려움보다는 정신적인 풍요가 있을 때 나는 상승곡선을 그렸고, 그 생애경험을 체크하면서는 내가 웃고 있었다.

대종사님을 만난 것이 내 생애 왜 가장 긍정적인가를 돌아보니, 나를 나로 인정받은 것과 동시에 나를 벗어나 국한을 없앤 삶의 발견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부처이듯이 모든 것이 부처임을 깨우쳐주신 까닭에 나를 온전하게 흔들었고, 결국 출가로 이끌었던 것이다.

익산 총부건설 당시 공동생활은 참으로 배가 고팠다고 한다. 공양시간에 모여 가난한 식사를 하다가도 손님이 찾아오면 부족한 공양을 소리 없이 덜어내 오히려 수북한 밥그릇을 만들었다고 한다.

밥 한술씩 퍼 담아 밥 한 그릇 내 놓듯이, 가난하지만 부자일 수 있는 비결이 나누고 덜어냄에서 시작되는 경험을 하게 했던 원불교로의 출가가 생애곡선의 최고점이 된 까닭일 것이다.

새벽에 교당신축불사 천일기도 16일째 마치는 죽비를 쳤다. 법신불전에서 참석자와 한 줄 소감을 적고 있는 내게 교도님이 다가와 하얀 봉투를 정중하게 주셨다. 교당에 오지 못한 날은 집에서 기도를 하는데, 기도책상에 놓인 기도문을 남편이 찬찬히 읽어보더니, 오늘 아침에 봉투를 건네주었다는 것이다.

그 분은 오늘 교당신축불사를 위한 가치를 발견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염원도 담았을 것이다. 오늘 올린 정성이 보태어지면 반드시 불사가 이루어진다는 것도 아마 아셨을 것이다.

그 분의 정성처럼, 우리 교단도 십시일반의 합력과 이소성대의 정성으로 이루어진 역사이다.

교단 초창 당시 선진님들이 일군 이 교단의 출발은 숯장사 엿장사로 기꺼이 나서게 했던 걸음에서 비롯됐다. 대종사님의 개교동기와 하나로 만나면서 가능했다고 본다.

한 기관 한 교당이 설립될 때도 그랬다. 소태산대종사탄백도 그랬고, 정산종사탄백도 그랬다. 앞으로 대산종사탄백과 교단100년기념성업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에 현상만 보이고 숨은 가치와 보람이 빠진다면 우리는 주저하게 될 것이다.

그 안에 개교의 동기가 살아 있어야만 진정으로 동참하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는 맑은 샘물과 밝은 지혜를 요구한다. 정의로운 실천이어야 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특정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특정종교에서 하는 운동에조차 기꺼이 동참한다.
왜 동참하게 될까? 거기에는 살리는 길이 있다. 상생의 길이 있다.
나만의 안위가 아닌 대중을 이익 주는 뜻이 있고, 땀방울이 있을때 기꺼이 함께 하는 것이다.

내 것을 내어주고도 부자 되는 기쁨과 보람이 생기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교단에서도 내 것을 덜어내고도 부자 되는 가치와 사업들을 해 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진행될 모든 공부와 사업도 마찬가지이다. 대종사님의 개교정신이 살아나서 덜어냄에서 부자되는 기쁨을 되돌려 주는 교단의 정책이 되고, 교화현장과 기관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되면 수 많은 십시일반의 공덕주가 우리 교단과 함께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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