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교리도를 접했을 때, 사대강령의 '교리상의 위치'가 명확히 이해되지 않았다. 교리의 강령이라고 하기에는 '불법활용'과 '무아봉공'이 어색했고, '정각정행'과 '지은보은'은 사족처럼 보였다.

원기22년경,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은 총부에 와서 귀교에서는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대종사께서는 "사은사요와 삼학팔조를 실천한다"고 대답했다. 경무국장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으니 다시 설명해달라고 했고, 대종사께서는 "정각정행, 지은보은으로 불교보급을 해서 진충보국(무아봉공)을 한다"고 대답했다.(한정석, 〈최초 정전의 해석〉) 사대강령은 교리의 내용을 대외적으로 이해하기 쉽도록 집약한 것이다.

정각정행은 삼학팔조에 해당한다. 간혹 영성수행단체에서 삿된 인도로 개인의 전도를 그르치고 사회를 혼란케 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일방의 수행을 통해 뭔가를 '보긴'(?) 했지만 정법수행이 아닌 관계로 전도몽상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깨치되 바르게 깨쳐야 한다. 대종사께서는, "사람이 세상에 나서 할 일 가운데 큰 일이 둘이 있으니 그 하나는 정법의 스승을 만나서 성불하는 일이요"라고 하셨다.(인도품 6장) 공부인에게 정법을 만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은보은은 사은사요에 해당한다. 대종사께서는 "부채를 가졌으나 더위를 당하여 쓸 줄을 모른다면 부채 있는 효력이 무엇이리요" 하셨다.(수행품 52장) 불법활용은 수행의 활용을 강조한 것으로 '정행'과 관련이 있다.

무아봉공은 신앙의 활용을 강조한 것으로 '보은'과 관련이 있다. 이처럼 사대강령은 '교리강령'이라기보다는 교리의 '실천강령'이다.

성인야구가 일본에 열세를 면치 못하던 20여 년 전에도 한국의 고교야구는 일본을 능가했다. 한국은 고교시절부터 직구 외에 변화구까지 가르치지만, 일본에서는 고교생에게 투구의 기본이 되는 직구만을 가르친다. 당연히 고교야구는 일본을 능가하지만 성인야구로 갈수록 기본기가 탄탄한 일본야구가 앞섰다.

불교의 정각, 불법, 무아와 기독교의 은혜(지은)에 그치지 않고 정행, 활용, 봉공과 보은에까지 나아간 점은 원불교법의 특징이자 대종사님의 위대함이다. 하지만, 정행(활용, 보은, 봉공)의 강조로 정각(불법, 지은, 무아)이 다소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는 듯한 교단의 분위기가 아쉽다.

무시선 무처선의 공부법에는 정시(定時)의 선과 정처(定處)의 선 공부도 잘 하라는 뜻이 들어 있다.(경의편 29장) 정각(불법, 지은, 무아)을 소홀히 한다면, 과거의 한국 성인야구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공부와 함께 가지 않는 '교화지상주의'는 교단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공부와의 '균형'이다.

<미주서부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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