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수 교도·백수교당
(논설위원)
요즘 무엇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나를 걱정하는 사회로 변화 돼가는 것 같아 마음이 매우 아프고 씁쓸하다.

그것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흉악하고 포악한 사건들이 눈만 뜨면 뉴스에 나와 온 국민을 경악케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충격적인 사건들이 안 일어날 것이라 누가 예측이나 하겠는가?

무엇이 인간을 이렇게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일까? 나의 좁은 소견으로는 바로 소외 에서 오는 사회의 차가운 시선이고 편견이며 홀대받는 도덕과 인륜의 정서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잘 나고 못 나고가 없다 모두가 평등하며 자유를 누릴 의무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소외는 바로 인간이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범죄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란 말을 한 번 생각해보자. 소외 받고 홀대 받는 사람의 심정으로 한 번 쯤은 되돌아 가보자는 것이다.

다변화된 사회 속에서 인간의 대화는 상술에 그치고 있다. 인간미가 결여된 물질의 노예가 된 것이다. 모든 대화는 머리로 해서는 안 된다.

따뜻한 가슴과 마음으로 대화를 해야 하며 상대의 깊은 마음을 보듬어야 한다. 즉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태산대종사께서는 인류와 세계의 미래가 물질문명의 발달과 풍요로 인하여 인간정신이 왜소해지고 물질의 노예 생활이 될 것을 예견하여 물질만능으로 인하여 한없는 고통에 빠져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원불교를 열고 법문을 펼치신 것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우리나라는 대가족 중심의 구조에서 핵가족 중심으로 빠르게 변하다보니 경로효친(敬老孝親) 사상이 퇴색되고 자기중심의 사회로 변하여 패륜과 우발적 범죄가 일어난 것이다. 이에 대한 대비책을 준비하지 못하여 사회적 문제로 야기된 것 또한 국가가 책임을 통감해야할 일이다.

정부는 10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이론에 치중한 사회복지정책을 만들어 시행 하다 보니 시행착오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뚜렷한 정책이 없어 사회문제가 된 것이 아닌가!

즉 경험과 현장을 무시한 탁상행정의 짜 맞추기식 정책의 맹점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라 생각 한다.

물론 경제 발전에 치중 하다 보니 도덕적 문제와 인륜적 정서는 아우르지 못했다고 변명하겠지만 치안부재로 인해 흉악한 범죄로부터 국민이 불안해 하는 일은 국가가 크게 반성해야 할 점이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국가가 보듬지 못했던 도덕적 인륜과 정서함양에 원불교는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대종사님의 법문을 전하면서 소외와 차별의 늪에서 눈물 흘리는 중생구제에 앞장서야 한다.

아울러 무관심과 편견이라고 생각할 수있는 다문화가족에게도 원불교의 관심과 배려가 절실하다. 우리나라에 다문화 인구는 211,458세대(2011.1월말기준)에 국적취득자가 69,804명이고 미취득자가 141,654명으로 다문화 인구가 대한민국 인구의 0.4%로 날로 증가추세이다. 문화적 차이를 잘 극복하고 정착하는 다문화가족이 있는가하면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파탄과 비관으로 눈물의 세월을 보내는 다문화가족 또한 적지 않은 현실이다.

그들에게 문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지금껏 살아온 관습이다. 그들은 눈으로는 볼수 있지만 들을 수 없고 표현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청각 장애인과 농아인의 답답한 심정 일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문화의 민족이 우리와 함께 공유하며 살아갈 것이다.

글로벌화 되어가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부정해서도 안되고 편견과 반목의 갈등을 표출해서는 더욱 안 되며 사회의 변화와 순리에 따라 이러한 현실을 우리는 받아 들여야 한다.

모두에게 평등과 은혜를 심어준 원불교가 법문을 통하여 소외 받고 홀대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힘을 주고 인생의 지혜를 주어 사회에 잘 적응하여 행복한 삶이 되도록 구제 해야 하며 국가가 보듬지 못했던 도덕적 인륜과 정서함양에 힘을 써 일체중생들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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