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으로 즐기는 차를 만들어야 합니다"
●부초차 등 제다 실습 진행
●각국의 36가지 제다 기술 보유

▲ 명차원 차밭.
▲ 전중기 본부장이 제다 강의를 하고 있다.
5월초,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 가는 길은 시원했다. 산야를 쳐다보니 온통 초록 일색이다. 최참판댁을 지나자 산등성이 곳곳에 가지런하게 무리 지은 녹차밭이 장관을 이뤘다. 지리산명차원 영농조합법인 주변에도 역시 마찬가지다. 입간판을 뒤로 하고 조금 올라가니 제다실습장 건물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마침 장유신협 다도회 회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전중기 본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객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론 교육에 들어가기 앞서 차 한 잔을 마시는 중입니다. 곧 이론교육을 한 후 제다실습에 들어갑니다."

아니나 다를까 차의 종류와 제다법에 대한 그의 강의가 이어졌다. 초의학술재단에서 발행한 교재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그는 먼저 수강생들에게 차와 함께하면 피가 맑아지고 젊어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그는 불가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방법을 소개했다. 차를 냉하지 않고 따뜻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차를 찌든 익히든 데치든 냉성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러한 냉에서 따뜻한 성질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적절하게 수분 함양을 조절하여 합성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의 본 모습인 냉한 성질을 잃게 됩니다."

그는 효소성분을 분해시키기 위해 부초(볶음)를 해야 한다는 점을 주지시켰다. 그래야 차의 성분이 변화된다는 것이다.

"건조과정을 거치는 동안 차의 향기는 청향, 구수한 향, 과향, 무향으로 이어집니다. 이에 앞서 차의 모양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비비는 유념과정이 필요하죠."

이것은 차 잎의 세포속에 들어 있는 수분을 빼내기 위해서다. 차의 성분이 잘 우러나도록 세포를 파괴시켜 주는 것이라 볼수 있다.

제다 실습

그의 강의는 제다 실습에서 그대로 적용됐다. 그런데도 수강생들은 머뭇머뭇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그의 자상한 설명과 세세한 손길이 보태진다.

"수증기를 내 몰아 주기 위해 골고루 볶으세요. 차 향이 좋죠."

"예."
수강생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차를 볶는 수강생들의 손 놀림이 빨라지자 그는 주변을 둘러 보다 한 곳에 머문다.

"이것은 볶아진 것이 아니고 익었어요."

차 생활을 30년 한 그의 충고에 수강생은 다시 한번 벽면에 설치된 모니터를 보았다. 모니터에는 차 볶는 과정이 방영되고 있었다.

차를 볶은 후 비비는 과정이 몇 차례 이어졌다. 강의에서 배운 대로 손을 모아 원형으로 둥글게 굴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시계방향이다. 풀어줄 때는 힘을 뺐다. 차 잎의 뭉침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손가락으로 차 잎을 가볍게 터는 모습도 보였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차를 비벼 본 사람들은 리듬을 타요. 손으로 만져 보아 온도를 체크해야 합니다. 향기도 체크해야 합니다. 각자가 비빈 차는 자기 맛과 자기 향을 내기 때문에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차입니다. 이 차는 자기를 닮은 차로 바뀝니다."

수강생들은 그의 말에 공감하듯 고개를 끄떡였다.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 수강생들도 몇 몇 있었다.
▲ 제다 실습은 차의 특성을 이해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제다 방법

제다 실습이 끝나자 오후3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트럭을 타고 식당으로 향했다. 이 자리에서 그와 진지한 대화가 이어졌다. 그는 먼저 제다 방법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현재 실시되고 있는 제다방법은 17가지입니다. 차 제다 방법에 대해 표준화가 되어 있지 않아요. 대표적으로 증기시스템이 많이 반입이 되어 있습니다. 화개 농가에서는 솥을 많이 사용합니다. 부초차는 솥을 이용하여 재벌을 하며 볶습니다."

그는 색깔과 향과 맛을 쫒다보면 증기를 하거나 데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쓴맛 떫은 맛을 싫어하는 까닭이다. 결국에는 누룽지 맛과 같은 구수함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찌거나 익혀 만든 차는 맛이 동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달리 부초차는 물리적 공식에 의해 차를 만듭니다. 이때 화학적 변화가 무수히 일어납니다. 하나도 일률적인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불가에서 행해 온 답이었습니다."

부초차를 제다하는 지리산명차원 영농조합법인은 여기에 더해 전 세계 3600가지 차 품종 중 2000여가지를 가지고 있다. 또한 36가지 제다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여기에 바탕해 한 때는 각 지역의 특징에 맞는 차를 보급했다. 회원이 10만명에 이를 정도였으니 맛의 특징을 살린 덕분이다.

"식문화에는 그들이 살아온 삶속에서 필요하고 절실했던 것이 배어 있습니다.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고 있어요. 독특하게 다른 맛을 요구해요. 유사하게 해 주면 긍정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서울 지역의 경우에는 순하고 부드러운 맛을 좋아합니다. 광주지역은 풋내와 비릿한 맛이 나는 것을 애용합니다. 충청도 위쪽은 비릿하게 하면 무조건 먹지 않습니다. 경상도 지역은 해물을 많이 접하니 고소한 맛을 좋아해요. 이와달리 대구지역은 고소해도 안 먹고 비릿해도 안 먹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오감(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으로 즐길 수 있는 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권하고 있다. 맛의 마지막 정점이 오감인 까닭이다. 그는 시대적 변화에 반응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통을 유지하면서 감각있게 변화를 모색해야 합니다. 시대에 따라 맛도 조금씩 변해지니까요. 즐거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차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식사 후 다시 지리산명차원 영농조합법인을 들러 차 한 잔을 마셨다. 하동의 기후에서 자란 녹차지만 제다 방법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을 알게 됐다. 그가 건네준 차 한 잔에는 아련한 감칠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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