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제덕 교도 / 일산교당

불교에서는 원불교를 불교의 종파로 간주하면서 정통성을 주장하는 듯한 느낌을 자주 갖게 된다. 나는 원불교는 불교의 종파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며 하나의 종교로서 같다고 본다. 그 이유는 교법의 총설에서 세계의 모든 종교도 그 근본되는 원리는 하나임을 밝혀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종사께서는 스스로 깨달으신 바가 선성들과 같다고 하신 점, 만유가 한 체성이라고 하신 점, 제불제성의 심인이라고 하신 점, 예수님의 심통제자가 되면 나의 일을 알게 된다고 하신 점 그리고 정산종사께서 삼동윤리를 말씀하신 점으로 볼 때 모든 종교는 다를 수 없는 것이다. 불교에서 원불교를 불교의 종파라고 하는 데 이것은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다. 종파라는 시각에서 보면 원불교만이 종파가 아니라 모든 종교가 종파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원래 우주에 종(宗)이 있고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 종교이므로 어떤 종교도 여기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원불교가 탄생하게 되었는가? 종교가 이미 제 길을 잃고 있으며 요즈음 종교의 행태(行態)를 보아도 속세와 무엇이 다른 지 전혀 분간할 수 없는 타락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는 현실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닌 것이다.

이미 세상은 황금만능주의로 비인간화, 비문화화, 비문명화, 시대의 함정(陷穽)의 도가니 속에 갇혀 인간의 본성까지 말살되고 암흑의 미혹에 사로잡혀 방황하고 있는 중생들에게 반야(般若)의 검(劍)을 들이대야 할 종교마저 부패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만성적 추태가 세속과 무엇이 다른 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종교인이라고 말할 수 조차 없는 시대가 되고 만 것이다. 대종사께서는 종교가 말법시대에 이르러 그 사명이 다 되었음을 알으셨을 뿐만 아니라 미래 세상을 손바닥 보듯 간파하시고 파란고해의 일체생령을 구원토록 하기 위해 원불교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런데 현재 교단은 교리적 내용과는 달리 폐쇄적 집단화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 지 성찰해야 하며 문제점에 대해서는 다양한 여론이 수렴되어 여과할 수 있는 범 교단적 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대종사께서는 누구나 종(宗)을 쉽게 알 수 있도록 교법을 열어줌으로써 탄탄한 제생의세의 길을 밝혀 주셨다.

과거는 견성을 부처로 보았으나 이것은 소승의 견지요, 대종사께서 말씀하신 견성은 우주경전을 볼 수 있는 입문서(불립문자의 세계)로 누구나 집에서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시고 한 획, 한 글자, 한 말씀까지도 대승을 설파하셨으므로 하루속히 대승체제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나 지구촌의 위기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인류의 존망(存亡)까지 걱정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의 개교 표어는 인간의 무명을 타파하기 위한 도전적 정신의 표현이라고 본다. 그러나 일제 강점하에서는 더 큰 미래를 열기 위해 부득이한 점도 있었던 것을 잘 알고 있다. 8·15 해방이 되면서 민주주의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기치 않았던 반민주적 행태의 긴 암흑의 터널을 벗어나는 데 수많은 시련을 겪어왔던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교단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음에도 소극적이고 미온적으로 대처함으로써 정의는 죽기로써 해야한다는 모순적 태도는 결국 교단 발전의 기회를 상실했다고 본다. 교단으로서는 인류구원은 말할 필요도 없고 종교의 위기까지도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으므로 좌고우면하지 말고 일원대도의 진가를 보여주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아무리 우주경전을 볼 수 있다고 할 지라도 현실적으로 눈앞에 전개되는 사바세계의 문제점들을 진단하고 치료하지 못한다면 제생의세는 언제 할 것인가?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